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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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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셸터 127. 시간은 특별함에 둥지를 틀지 않아. 시간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을 찾지. 다른 시간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평범한 어느 오후일 거야. 삶 그 자체를 빼면 아무런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후……기억을 잃는 알츠하이머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이라고들 한다.한 사람이 자기 생에서 가장 생기있던, 아직 반짝이는 순간을 찾아가는 여정이라생각하면 어떨까.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슬프다는 말이 당사자의 실제 감정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그럼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주변인의 회피일 뿐 본인의 바람은 아닐지도 그 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과거를 등뒤로 보내며 살아온 사람이‘아직 아닌 미래’로부터 ‘더이상 아닌 미래’ 앞에 서기 두렵다면 몸을 반대로 돌려 세워다가..
내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350. 나는 또 내일 탈 기차가 있으니까. 기차에 타면 침대 한 칸 만큼의 내 공간이 주어지고, 거기선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 잠을 자고 되고, 책을 봐도 되고, 빈둥거려도 된다. 이 도시가 조금 별로여도 된다. 또 이동하면 된까. 설령 이상한 사람이 있어도 언젠가 그 사람이 내리든 내가 내리든 하게 된다. 내가 타는 기차는 언제나 완전 새로운 기차다. __ 기차 여행에 대한 로망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화장실이나 덜컹거리다 열려 버릴 것 같은 문에 대한 염려는 있지만최선을 다해 단디해두고. 멈추지 않고 달라지는 창밖의 풍경을 쉼없이 감탄하며 달이 뜨고 지는 시간에 오로지 레일을 밟는 기차의 소리만을 배경으로 두고. 지루할지도 모르니 이것 저것 좋아하는 일들을 가방에 꾸리는 준비 과정까지. 낭만..
서평쓰는 법 이 책은 서평과 독후감을 구별하며 시작한다. 그에 따르자면나는 개인적인 감상을 남기는 것으로 독서를 마무리하니 독후감을 쓰는 사람이고. 어렸을 때 가장 하기 싫던 숙제는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편이 더 당연한 일이 되었다. 책을 읽다보면 울림이 있는 문장을 만난다. 그 순간을 포착하고, 연이어 떠오르는 단상을 남기는 작업은소소한 일상을 작지만 분명한 의미를 가진 인생으로 달리보게 만든다. 오랫동안 책을 읽는 것도, 읽지 않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라 생각했다.하물며 읽은 후 기록의 형태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나.오히려 책에 대한 접근을 주저하게 만든다면 대단한 독후 활동이라한들 아무 의미 없다. 어른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놀이. 책읽기는 그..
디에센셜 - 한강 163. ……그때 어머니는 대답해줬어요. 그렇지 않다고.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할 거라고. 단지 아주 뿌옇게 될 뿐이라고. __ 상실과 소멸이 정해진 미래를 알게 되었을 때삶으로부터 도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그 미래의 일부와 모서리쯤이 닮은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올것이 왔구나 하며 지레 뒤로 넘어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그런 것들을 알아내려고,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하려고 날을 갈며 시간을 보낸들 피할 수 있을까. 피할 수 없고,즐기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는데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인정하라는 요구에 맞서기란 버거운 일이다. 잠을 자고 일어나 먹고 마시며, 내 몫의 일을 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걷는. 현재를 실감하는 것 밖에. 오늘을 살아낸다. 답을 기다려야 하는 질문들을 그만 멈춘다. __..
2024 책 갈무리 즐겁게 읽었고덕분에 지났다. 활동으로 한 달에 한 편, 신간 소설을 만났고 미션 의무가 생겨 재미 너머의 독서를 경험했다. 정색하고 서평을 쓰고 싶어지네. 이제야 읽은 한강 소설 두 권 참 좋았다. 한강, 클레어 키건, 카를로 로벨리, 이꽃님, 문지혁 작가의 책은 두 권씩 읽었는데 모두 그럴 만 했다. 의리와 기대, 약속의 마음으로 읽어낸 어슐러 르귄이나 한정원, 임경선의 책도 있다. 작가를 읽기보다 책을 읽으려 하는데 작가와 뗄 수 없기도 하지. 책을 읽는 건온전한 나만의 시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내가 사랑하는 책을 타고 나가 나의 세계가 확장되길, 사랑스러운 문장을 만나 나의 세계가 다채로와지길 소망한다.
진은숙과의 대화 책의 마지막에 실린 연보와 작품목록이 길다. 나는 진은숙 작곡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현대 미술은 일부러 찾아다니며 보았음에도, 현대 음악에 관해서는 애초에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다섯 개의 문. 다른 관점을 가진 인터뷰어를 지나며 조금씩 열리는 문 틈으로 작곡가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가 세운 견고한 음악의 세계, 진은숙 작곡가 자신의 세계를 본다. 경험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인물이다.익숙해지지 않는 말투, 너무나 단단한 정신. 빠져들기 쉽지 않은, 하지만 책장을 덮을 수는 없는 작곡의 세계, 창작의 과정을 경험한다. 그의 위대한 업적은 타인의 이해나 공감을 우선하기보다 내밀한 몰입과 창작 그 자체를 사랑하는 중에 낳고 쌓인 것이 아닐까. 잊지못할 예술가의..
아티스트 웨이 9월 23일에 시작해, 여행 주간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한 장씩 차례로 읽어나갔다. 예전에 한 번 시도한 적이 있고 그 때는 모닝페이지나 아티스트 데이트 같은 미션 실행 없이 리딩만 했던터라, 9주차 정도까지 읽다가 멈추었다. 하지만, 책에 대한 인상이 좋게 남아 꼭 이 책으로 모닝페이지를 훈련하며 다시 읽고 싶었는데 그 사이 절판에, 출판사를 옮기고, 개정판이 나오는 바람에 예전의 책을 어렵게 구했고, 12주간 읽기 위해 대출 도서를 스캐닝해 패드로 읽었다. 책이 해결되기 한 주 전에 모닝페이지를 시작했고, 3개월간 평일 오전에 꾸준히 기록하다보니 루틴이 되었다.아티스트 데이트를 스스로에게 권하다보니, 외출을 하게 되고, 브런치 에 대한 구상이 구체화 되었고.내 안에 창조성이 있을까? 라는 질문은 더이..
58. 거기서부터 겨울 바다가 다가온다. 힘차게, 더 가까이 밀려온다. 파고가 가장 높아진 순간 하얗게 부서진다.__ 하얗게 이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분명 있다가 사라지는 그 하얀 물결을 쫓노라면지나간 어느때로 밀려갔다가지금 여기로 돌아온다. 흰 책장이 한 장 한 장 넘어가며 가슴속에 쌓이는 뭉치가 있었다.작가의 말에 이르러서야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 쉭 하고 꺼져버렸다. 누군가를 향한 글은누구에게나 도달할 수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