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2024 (39) 썸네일형 리스트형 흰 58. 거기서부터 겨울 바다가 다가온다. 힘차게, 더 가까이 밀려온다. 파고가 가장 높아진 순간 하얗게 부서진다.__ 하얗게 이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분명 있다가 사라지는 그 하얀 물결을 쫓노라면지나간 어느때로 밀려갔다가지금 여기로 돌아온다. 흰 책장이 한 장 한 장 넘어가며 가슴속에 쌓이는 뭉치가 있었다.작가의 말에 이르러서야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 쉭 하고 꺼져버렸다. 누군가를 향한 글은누구에게나 도달할 수 있음이다. 소년이 온다 30. 걱정 마요, 며칠만 일 거들다가 들어갈게요. 정대 찾아서.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너는 상무관으로 뛰어들어갔다. __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관련 일정 중에 지역 도서관 방문이 있었다. 매년, 그 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을 읽은 어린 학생들이 작가와의 시간을 갖는단다. 내내 차분한 표정의 한강 작가는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며 웃고 있었다. 그 어떤 일정보다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던 것 같다. 학생들의 인터뷰, 작가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인간에 대해 알 수 있었다는 감상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분위기가 너무나 부러웠고, 책으로 갈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신뢰가 견고해졌다. 작가가 이 소설을 울면서 썼다는 말을 듣고 나는 겁을 먹었다. 그런 말 없이도 나는 툭하면 우는데 너무 슬프면 어쩌지 했다. .. 태도에 관하여 183. 그것들이 하나의 확고한 루틴으로 일상에 안착하게 된 것은 내가 그것들을 어느 시점부터 내 인생에 ‘제대로’ 들이기로 선택했기 때문인 것 같다. __ 올해는 유난히 피가 마를 것 같은 시간이 많았는데 그러는 중에도 일상에 새로운 일들이 들어섰다. 이미 자리를 잡아 아침 루틴이 된 일이 있고자꾸만 생각이 나는 걸 보니, 곧 그렇게 될만한 것도 있다.새로운 일이라하면 시도 자체의, 도전 자체의 의미 덕분에 진취적이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뽐내지만, 나의 새로운 루틴은 궁지에 몰린 발악에서 피어난 것들이다. 나 자신을 소중히 하라며, 내 눈으로 지켜보자고 시작했기에. 그래서인지 다섯가지 태도 중 ‘성실함’을 오래 길게 읽는다. 이번에는.초판을 읽을 때는 다섯 가지 태도를 담은 단어가 새삼스러웠고, 감각하며.. 우리는 운동은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166. 나는 당신의 고유한 경험을 이해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언어의 장벽이 없기를 바란다. 통역 따위의 번거로움 없이, 당신의 몸이 가진 맥락과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맥락을 이해하고 싶다. 그래서 당신의 몸이 가진 역사를 잘 알아차릴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가 언제나 같은 언어를 썼던 것처럼, 당신도 모르는 새에 번역을 마쳐 두고 싶다. __ 센터를 찾는 선생님들(회원) 보다 언제나 한 발 앞에 마음을 두는 선생님. 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서기까지가 가장 힘든 허들이라는 걸 알아주는 선생님. 그는 먼저 이해하려 하고, 먼저 읽어내려 노력한다. 마음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겐 후해질 수밖에. 나 역시 세이프짐으로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 이런 트레이너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비.. 생활체육과 시 127. 오늘은 그들이 동쪽으로 어느 만큼 갈 수 있었을지를 생각하는 날입니다 너무 멀리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문득 서쪽으로 가진 않았을까를 걱정하는 날입니다 무리 중 누군가 손을 번쩍 들어 아래쪽으로 내려가보자 제안했다고 생각하는 날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__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책 속에 저 먼 하늘의 구름을 뚫고 나아갈만큼의 커다란 포물선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이야기들이 담겼다. 그 중 하나. 시인의 글은 일단 며칠 아껴두었다가적당한 밤에 침대에 모로 누워 읽다 그대로 잠들고 싶다.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꼭 한 번은 자세를 바꾸게 되고, 그러다 기어이 몸을 일으키게 된다. 그럴 때면 잠이 달아나니 서운하기보다잠은 다시 올 것이라는 태연한 태도를 가진 사람처럼 굴게 된다. 그런 나를 깨우는,.. 나주에 대하여 88. 쟤는 좀 신기하다 같은 생각과 등을 맞대고 있는 생각은 결국 쟤가 보기에 나는 어떨까? 였다. __ 여덟편의 소설을 읽는 동안 두 번, 세 번쯤 의식적으로 멈추었다. 창문을 열었고. 그 창문으로 불어들어온 건 그래서 나는? 하는 물음이었다. 사랑은 참 어려운 일이다. 어렵다는 단어의 익숙함이 사랑의 어려움을 쉬워보이게 만드는 것도 같다. 누구를 사랑하는 가에 대한 관심이 사랑 자체의 존재 의미를 흔든다. 이해하는 마음과 그렇구나 하는 반응 사이에 골이 있다. 그럼에도 아는 마음, 닮은 마음을 읽는다. 그런 마음들이 먼저 보인다. 섬세한 어떤 표현들은 있는 그대로였다. 궁궐 걷는 법 73. 이제 왕실의 정원 후원을 걸어보겠습니다. 지금의 궁궐은, 걷고 싶은 장소다. 만개한 봄꽃을 맞으러, 태양을 피할 그늘을 찾아 낙엽을 밟고, 소복히 내려앉는 눈의 소리를 듣고 싶을 때면 생각나는 곳. 앞의 책을 읽고 궁궐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고 싶었는데 마침 그이의 책장에, 게다가 유유의 책. 맵을 열어두고 사진을 찾아가며 읽었지만 역시나 직접 걷고 싶어진다. 비가 내릴 때 눈이 쌓일 때 그래서 찾는 이가 많지 않을 때 조용히 걷고 싶다. 그 자리를 지난 수많은 이들의 흔적을 만날까 하며. 공간을 휘감는 바람은 여전하나 저마다의 시절을 품은 신비로운 장소. 대온실 수리보고서 93. 그 화려한 식물들이 때에 따라 얼고 마르고 죽어가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투명하게 빛나는 이 유리 온실은 어쩌면 자연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없앨 수 없는 이유도 자명해지는 것이었다. —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여러장이다. 궁의 지도, 온실을 열고 들어서 둘러본 장면, 원서동 골목길 그러다 바다가 보이는 석모도에 다른 대륙으로 이르는 항로까지 그리게 된다. 뼈를 품은 흙의 먼지를 일으켜 들여다보다가, 바다를 품은 길을 멀리서 내려다보게 된다. 책의 끝에 이 소설은 허구이며 이러저러한 일은 사실이 아니라 한다. ‘사실’이라는 단어를 펼쳐두고 발굴한다면 이 소설은 당연히 존재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역사 속 일본인은 적이라 새기며 자랐고, 일본인 이름은 내내 입에 붙지 않아..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