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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트의 만찬 74. 아니에요, 저를 위해서였어요. 바베트는 도마에서 일어나 자매 앞에 섰다. 저는 위대한 예술가예요! 정치적 격변을 피해 몸을 피한 바베트는 금욕과 절제의 삶을 살고 있는 신실한 두 자매의 집에서 가정부로 지낸다. 평범한 여인인줄로만 알았던 바베트는 사실 손에 꼽는 요리사였고,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만 프랑의 행운을 하룻밤 만찬을 위해 전부 쏟아붓는다. 자신이 가진 열정과 재주를 남김없이 발휘할수 있었던 완벽한 식탁은 바베트에게 유일하고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예술을 통해 창조의 기쁨과 사랑을 나누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 삶은 단 한 번의 불길을 위해 사는 내내 장작을 패야 하는 것일까 싶기도 하다. 불꽃은 꺼지지만 온기는 영원할 것이므로. 켜켜이 쌓인 짙은 선이 인물의 깊은 표정을 부르는 일..
저 청소일 하는데요 그려놓은 현재 위로꿈을 이야기한다.삶의 어느 자리가 고단하지 않을까.그 고단함을 말할 수 있음은 자신의 삶에 대한 가장 큰 격려다. 그의 꿈은 꿈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표지 뒷면의 그림도, 짧은 문장도 여러 번 보게 된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 168. “하지만 제 말을 듣는 사람은 자기가 기대했던 말만을 간직할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폐하께서 귀 기울이시는 세계를 묘사하는 말이거나 제가 돌아가는 날 저희 집 밖의 거리를 오갈 짐꾼이나 곤돌라 뱃사공들을 묘사하는 이야기일 겁니다. 또 제가 만약 제노바 해적들에게 잡혀 모험소설을 쓰는 작가와 같은 감방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경구, 말년에 작가에게 들려줄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지배하는 것은 목소리가 아닙니다. 귀입니다.” _‘책에 관한 책’들에 어김없이 등장하기에 한 번은 읽어야지 했던 이 책은 동네 책방, ’책방, 오늘‘에서 그이가 데려와 진작부터 우리 집에 있었다 ㅎ 그러니까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 일단 사두었다가 읽을 때 돼서 읽으면 됩니다 :) 1부에서 9부로 구성..
침입자 29. 이때의 디아나, 그러니까 과거의 디아나, 짧고 효율적으로 큰 변화를 불러올 예정인 모험을 향해 용감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던 해맑은 덜렁이 디아나를 생각할 때마다, 모든 일을 겪은 이후의 디아나는 자신이 견딜 수 없이 순진했다는 생각과, 눈군가를, 특히 자기 자신을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흠씬 두들겨 패 주고 싶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173. 나는 지금 이 안에 들어와 있고, 이 안이 곧 내 안인데, 이 안을 손으로 만질 수는 있어도 이해라고는 요만큼도 할 수가 없어. 그런데 뭘 보려고 해도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게 코가 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서 그림을 보는 거랑 뭐가 달라._자세히 보겠다고 코가 닿을 만큼 다가갔다가 초점을 잃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회색빛 바탕뿐이었던 그림을 본 경험..
세계문학전집 이야기 310.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책 만드는 일은 언제나 기껍고 새롭고 매혹적이다-지난 6월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 500번째 책을 냈다. 그 대단한 숫자의 의미를 돌아보며 축하하는 자리에 빠질 수 없는 “나에게 000 책은 말이야” 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모였다.책을 둘러싼, 책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의 그러니까 누가 등 떠밀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발적 애정을 시작으로 끈끈하게 엮인 책. 고전이라 적고, 지금의 세계를 담아 한 손에 쏙 들려주는 세계문학전집의 출판 과정은 물론, 예상하지 못한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너무나 재미있었다. 다양한 필진이 ‘세문전’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정말 저마다 매력과 흥미가 하나도 겹치지 않는 것도 대단했고 번역가 선생님들의 글은 조금 더 반가웠다. ‘우리’라고 묶이는 이들..
체호프 단편선 17 저녁 공기의 눅눅한 냄새가 짙게 풍겨 왔고 달이 막 떠오르고 있었다. 별이 보이는 청명한 하늘에는 단 두 조각의 구름이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었다. 하나는 컸고 하나는 그보다 좀 작아서 마치 외로운 모자처럼 보이는 두 구름은 저녁 노을이 사라져가는 서쪽을 향해 사이좋게 흘러가고 있었다.이런 아름다운 장면과 소파에 누워 그리고…… 죽었다, 는 문장이 공존하는 체호프의 단편.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려면곧 죽을 것 같이 뜨거운 무더위와 연신 찍게되는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감탄을 자아내는 저녁 노을을 모두 겪어야 하듯이. 나 아닌 이야기가 없고너 아닌 이야기는 없다
오독의 발견 59. 기억하지는 못해도 깊어질수는 있었다-커다란 바람이었는지 모르나그 바람에 실려 나도 여기까지 왔다- 오독오독 제목에 끌려 바짝번쩍 손들었다가 작은서점의 선물로 받은 책. 독자를 이끄는 손 끝이 (여전히) 얼마나 야무지고 단단한지! 눌러담은 정성과 진심은 놓치고 싶지 않은 기운이 되었고 무엇보다 너무 재.미.있.다. 책으로 가는 책들은 언제나 소중하고,이 책은 건너가는 그 길을 더욱 경쾌하게 만들어준다.읽었던 책은 책꽂이에서 찾아 책상 위에 꺼내놓고궁금한 책은 서둘러 장바구니에 담아두며 책읽기 의식을 마무리 하게 된다많이 읽거나 깊이 읽거나 일단 읽거나 쓰윽 읽거나 이번에 읽거나 나중에 읽기로 한 책들에 파묻혀 울고 웃고 생각하며 거니는 삶은 외롭지도 한가롭기만하지도 않지만 고요하고 충만하다. 기억..
박완서의 말 여름날 선풍기 바람에도 날리지 않는 머리를 가만히 하고멀지 않은 곳에 시선을 던져놓은 작가의 모습이 한가롭고 평안하다. 이 책은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박완서 작가의 대담집이다. 마흔에 활동을 시작한 작가, 전쟁을 통과하고, 가족을 잃은 경험을 안고 산 사람, 개인주의자, 웃는 얼굴의 사진이 많은 사람. 그 외에도 수많은 설명과 이야기들. 모두가 그에 관한 사실이지만 그의 전부는 아니다. 인터뷰를 통해 같은 이를 다르게 바라보며, 각각의 이야기들은 모여 전체보다 더 큰 ‘그 다음’과 ‘저 너머’의 감동을 들려준다. 자신의 말을 가진 사람. 듣고 보아온 수많은 말을 자기 등 뒤로 세워두고 스스로 가려내고 골라내어 눈 앞에 두는 사람. 외부의 시선, 압력, 상황에 흔들리기보다 그마저도 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