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610)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210. “열이 확 받아서 ‘언어 시스템 자체가 인용이야’라고 쏘아 붙였지. ‘보르헤스도 그렇게 말했거든’ 하고. 그랬더니 쓰즈키가 ‘논쟁에서 권위를 방패로 쓰는 사람은 지성이 아니라 기억력을 쓰는 것에 불과해’라잖아. ‘다빈치도 그렇게 말했어’ 하면서. 그럼 사귀는 수밖에 없지.”___그러는 수밖에 없지. 매우 동의___ 내가 꼽는 책의 매력 중 하나는 나의 생각과 말을 적확하게 옮기는 문장을 만나는 반가움에 있다.그 매력이 말을 통해, 언어를 통해 등장하고, 인용되고, 의미가 확장되거나 축소되며 퍼져나가는 다채로운 운명의 일부를 가져온 이야기.작가의 이력과 괴테라는 대단한 인물을 앞세운 덕분에 네임드의 추천에 소문까지 무성한 책인데, 괴테‘학’ 부분만 적당히 읽어내면 소설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그래서..
어른의 미래 동시에 양쪽을 볼 수 없고, 한 번에 양 편을 들 수 없다.어른은지금 보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한 편의 생각이나 의견이 언제나 옳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이다. 눈 앞의 일들에 급급해 어른스럽기가 여간 어려우니그래서 어른이라 할 이가 적은지도 모르겠다.짧은 소설 속엔 낯설지 않은 긴 하루가 들었다. 이야기 속 긴 시간엔 나의 일상에도 스친 짧은 순간이 담겼고.이번주 포털 뉴스를 차지한 일련의 사건과 얽혀 소설 속 이야기는 결코 한때의 일만은 아니라 한다. 누군가는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지만 답을 내기란 여전히 느리다. 그저 해결을 위한 시도가, 이해를 위한 노력이 (이야기에 기댄 노력까지도) 위로만 되어도 다행인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음보다 발을 떼는 것이 나으므로. 뒤가 반쯤..
줍는 순간 99.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시구로 단박에 나를 사로잡았던 시인. 그때껏 그의 시를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어쩐지 저 구절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모든 사랑은 와락 시작되는 것이니까. __ 방송에서 유럽의 구석마을을 여행하고 혹부리 영감이 노래하듯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야기를 할 때 테이블에 둘러앉은 그 누구보다 본인이 즐거워보여서 기분좋게 기억에 남았고. 그렇게 신나보였던 건, 처음 찾은 장소라도 낯설지 않게 다가가는 용감한 여행자였기 때문인가보다. 특별한 순간을 고대하며 용감하게 발을 내딛는 여행자의 이야기. 목적지로 향한 이유가 (내 기준으로) 낭만적일수록 뜻밖이어서 더욱 좋을 순간을 주워들게 된다. 알아보는 눈을 가진 이에게 선물같은 순간..
책을 덮고 삶을 열다 30. 예술이라는 단어를 확장시키는 데 그 누구보다 심혈을 기울인 작가 어슐러 K.르 귄은 예술은 자아를 발산하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 속에 존재하는 방법, 우아하고 힘차게 존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메리 올리버는 예술은 희망, 비전, 영혼의 말하고 싶은 욕구하고 했다. 앨리 스미스는 갖고 있는 것과 갖지 못한 것의 조합으로부터 뭔가를 만들어내는 행위라고 했다. 보르헤스는 예술은 사람의 영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것, 카뮈는 인간의 모습을 더욱 감탄스럽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자신이 보는 모든 것들의 생명을 가장 높은 존엄성의 위치로 올리는 것이라고 했다. 타르콥스키는 예술은 삶을 이해하려는 시도하고 했다. 이 모든 예술에 대한 정의는 예술을 말하면서 삶 자체에 대해 말한다. ..
언폴드 21. 하지만 어떻게든 나의 길을 만들어 가야 했다. 아주 작은 것부터, 마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하나씩 , 하나씩. —성실. 꾸준함. 반복이 데려오는 기적. 마냥 좋다새벽에 만난 작은 그림들이 한 권의 책이 되어 한 달동안 잠들기 전 나를 달래주네.
오직 그녀의 것 55. 처음엔 원고를 지나치게 겁내는 게 아닌가 싶더군요. 원고를 대할 때 전전긍긍하는 느낌이랄까. 이래서야 교열을 제대로 하겠나 싶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런 게 있더군요. 뭐라고 해야 하나, 그걸. 원고에 대한 애정이라고 해야 하나, 마음이라고 해야 하나. __ 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책상위에 쌓인 책들을 감싸기도, 그 위로 쏟아지기도 하는 장면이 여러 번 (아마 다섯 번 정도?) 등장한다. 햇살의 끝이 오늘의 책을 가르키는 듯 싶어 익숙한 책들을 낯설게 보기도 하고, 일렁이는 햇살이 머무는 서가를 멀리서 바라보려 자리를 조금 뒤로 옮기기도 한다. 볕이 점점 짙어지면 책장이나 책 표지들이 바랄까 싶어, 이내 블라인드를 내릴지 말지 망설이기도 하지만, 해가 뜬다고 날마다 그런 장면이 연출되는 것..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11. 나무는 우리보다 오랜 삶을 지녔기에 긴 호흡으로 평온하게 긴 생각을 흔다. 우리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동안에도 나무는 우리보다 더 지혜롭다. 하지만 우리가 나무의 말을 듣는 법을 배우고 나면, 우리 사유의 짧음과 빠름과 아이같은 서두름은 비할 바 없는 기쁨이 된다. 소란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앉아 내 안의 기운을 달래주고 싶을 때. 밀려드는 노곤함에 까무룩 졸다깨어도 펼쳐 읽는 어디든 평온한 책이다. 우리가 아는 바로 그 헤르만 헤세의 나무와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시와 에세이. 나란히 실린 아름다운 그림이 이 작은 책의 싱그러움을 더한다.
채식주의자 미친 사람이 미쳐도 되는 세상이 어딘가에 있어야할텐데.정상이고자 발버둥 치는 이들이 어쩜 더 가여운지도 몰라.생이 한 번이라는 사실이 한계로 느껴지기도, 다행으로 접히기도 했다.가장 폭력적인 장면, 말, 상상이 힘겨웠지만 내려 놓을 수 없던 한강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