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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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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셸터 127. 시간은 특별함에 둥지를 틀지 않아. 시간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을 찾지. 다른 시간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평범한 어느 오후일 거야. 삶 그 자체를 빼면 아무런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후……기억을 잃는 알츠하이머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이라고들 한다.한 사람이 자기 생에서 가장 생기있던, 아직 반짝이는 순간을 찾아가는 여정이라생각하면 어떨까.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슬프다는 말이 당사자의 실제 감정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그럼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주변인의 회피일 뿐 본인의 바람은 아닐지도 그 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과거를 등뒤로 보내며 살아온 사람이‘아직 아닌 미래’로부터 ‘더이상 아닌 미래’ 앞에 서기 두렵다면 몸을 반대로 돌려 세워다가..
내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350. 나는 또 내일 탈 기차가 있으니까. 기차에 타면 침대 한 칸 만큼의 내 공간이 주어지고, 거기선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 잠을 자고 되고, 책을 봐도 되고, 빈둥거려도 된다. 이 도시가 조금 별로여도 된다. 또 이동하면 된까. 설령 이상한 사람이 있어도 언젠가 그 사람이 내리든 내가 내리든 하게 된다. 내가 타는 기차는 언제나 완전 새로운 기차다. __ 기차 여행에 대한 로망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화장실이나 덜컹거리다 열려 버릴 것 같은 문에 대한 염려는 있지만최선을 다해 단디해두고. 멈추지 않고 달라지는 창밖의 풍경을 쉼없이 감탄하며 달이 뜨고 지는 시간에 오로지 레일을 밟는 기차의 소리만을 배경으로 두고. 지루할지도 모르니 이것 저것 좋아하는 일들을 가방에 꾸리는 준비 과정까지. 낭만..
서평쓰는 법 이 책은 서평과 독후감을 구별하며 시작한다. 그에 따르자면나는 개인적인 감상을 남기는 것으로 독서를 마무리하니 독후감을 쓰는 사람이고. 어렸을 때 가장 하기 싫던 숙제는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편이 더 당연한 일이 되었다. 책을 읽다보면 울림이 있는 문장을 만난다. 그 순간을 포착하고, 연이어 떠오르는 단상을 남기는 작업은소소한 일상을 작지만 분명한 의미를 가진 인생으로 달리보게 만든다. 오랫동안 책을 읽는 것도, 읽지 않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라 생각했다.하물며 읽은 후 기록의 형태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나.오히려 책에 대한 접근을 주저하게 만든다면 대단한 독후 활동이라한들 아무 의미 없다. 어른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놀이. 책읽기는 그..
디에센셜 - 한강 163. ……그때 어머니는 대답해줬어요. 그렇지 않다고.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할 거라고. 단지 아주 뿌옇게 될 뿐이라고. __ 상실과 소멸이 정해진 미래를 알게 되었을 때삶으로부터 도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그 미래의 일부와 모서리쯤이 닮은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올것이 왔구나 하며 지레 뒤로 넘어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그런 것들을 알아내려고,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하려고 날을 갈며 시간을 보낸들 피할 수 있을까. 피할 수 없고,즐기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는데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인정하라는 요구에 맞서기란 버거운 일이다. 잠을 자고 일어나 먹고 마시며, 내 몫의 일을 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걷는. 현재를 실감하는 것 밖에. 오늘을 살아낸다. 답을 기다려야 하는 질문들을 그만 멈춘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