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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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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컬러 디테일과 뉘앙스를 만들어내는 미묘한 경계, 아름다운 쪽을 감각하기 위한 공부 중.컬러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정의, 디자인으로 확장되는 컬러, 배색을 통한 색에 대한 연구, 콘셉트에 맞춘 컬러 선택, 비기라고 할 수 있는 사용법까지 여러 예시와 함께 쉬운 말로 설명되어있다.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이를테면 디자인) 이런 책을 쓰윽 읽고 나면 다채로운 세상을 잠시 내가 만든 프레임에 담아보는 재미가 있지. 50페이지쯤 지나니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새기고 스미는 공부가 되어얄 듯 싶은데, 그러려면 빌려온 책을 다 읽고 반납한 뒤 사야하는 거 아님?! 도서관 서가 사이를 걷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책세상에 책이 이렇게나 많지만도서관에서, 큰 서점에서, 동네 서점에서, 피드에서 만날 수 있는 책이 ..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96. 흐르는 물에 흐르는 눈물을 보태야 해, 노래에 침묵을 보태듯이. 웅비하는 동시에 스러지는 바람을 대기에 보태듯이지팡이의 둥근 끝부분과 철제 덧문에 천천히 녹이 슬어 가루가 더께로 앉듯이. 그러면 어느 날 망각이 그들을 덮치고, 허공이 그들의 이름을 집어삼키고시간이 그들을 사라지게 할 거야. 135. 가, 보내는 곳 어디서나 족족 퇴짜를 맞는군.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야. 나의 행복, 내 사랑, 그건 그들의 행복이 아니었나 봐.
망각일기 9. 모든 순간을 기록하려 했지만, 시간은 순간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순간을 포함하고 있다. 시간은 순간 말고도 많은 것을 담고 있다. 103. 그리하여 일기에 관한 이 책에 내 일기를 포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기를 참고하고 새로운 글을 계속 써나가는 것뿐이었다. _ 얇고 작은 이 책은 가득하고 단단하다. 기꺼이 밤을 지새고픈 사유의 꼬리들이 문장 사이를 넒힌다 기록(혹은 기억)의 마력에 빠진 이가 그 기록을 기념하려다 결국 새로운 기록(분명 기억)을 남겨버린 이야기. 새로운 장르, 너무나 매력적인 책이다! 33. 나는 사실 정보를 충실하게 기록한다. 내 기억보다 더 현실적인 정보가 글에 품위를 더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런 정보가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연매장 33. 그녀는 너무도 당혹스러웠다. 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 역시 사랑한 그 사람이 가버리자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위태로운 삶에 찾아온 큰 슬픔, 그런데 동시에 얹힌 감정이 그제야 찾아온 안도라니. 비극이겠구나.그리고 그랬다.깨어나지 못한채 거슬러간 과거는 그대로 묻혔다. 캐내려는 이는 비밀의 끝이 없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누군가는 기꺼이 알기를 그만두기도 한다. 모두에게는, 어떤 일에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는 사실을한 번씩 떠올리는 것이때로는 최선의 삶이기도 하다. 450여 페이지의 소설은 흡입력이 대단해 놓을 수가 없고짧은 문장과 구성 덕분에 촘촘히 건너 긴 시간을 달리는 내내 재미있다. 참담한 과거의 기록이 먼 곳의 누군가에겐 한 편의 흥미로운 소설이 될 수 있다. 이야기..
봄 밤의 모든 것 139. 하지만, 그는 생각했다.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타인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걸까?소설 속 장면들을 지나며내가 그랬던가, 나도 그랬지. 생각하고 또 한다. 대체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어디까지가 사랑해야 할 타인일까.나 자신은.제대로 사랑하고 싶은 이유가 뭘까. 사랑은 결국 무얼까.귀찮음을 무릅쓰고 몸을 일으켜 세우는 모든 일의 시작이 사랑일테다.낯선 나와 익숙한 타인 사이에 경계는 계절의 변화 만큼 흐릿하지만힘주어 눈을 뜨는 순간이 사랑일테다. 온화한 시선, 섬세한 감정을 담은 이야기는 알지만 잊고 있던 마음과 묻어둔 목소리를 새삼 꺼내들게 만들다. 담담한 결의 인물은 만나는 그 순간이 위로이고.머리카락을 날리는 싱그러운 봄바람은 언제나 반갑다. 하루가 저물 때 무거워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99. 결국 모든 것이 초콜릿이나 비스킷을 담았던 낡은 상자들 속에서 끝이 나는 것이었다. __그런 상자가 몇 개 있다. 한 번씩 들여다보고 비우고 치우고 남기며, 새 것은 아닌 새 상자를 다시 꾸린다.순전한 과거.잊었던 장면을 꺼내며나는 그 때로, 지금보다 어리거나 젊고지금과는 생각도 모습도 다른그 때로 돌아간다. 마치 지금이 현재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을 즐기면서. 돌아가는 이가 나 자신이 아니라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 된다. 상자들 속에서 그대로 끝나버리는 것. 기억나지 않는 시간을 내 것이라 할 수 있을까. 타인의 기억에 의존해 찾아낸 과거는 나의 과거일까. 조금씩 잊힌 기억은 달래보지만 송두리째 사라진 것은 그만 단념해야지 않을까.__ 날마다 오늘을 사는 사람의 오늘은 내일의 어제가 될테지만 ..
느리게 가는 마음 32. “저기 봐라.” 어머니믜 손끝을 따라 가보니 하늘에 무지개가 있었다. 어린 성규가 울 때면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성규를 달랬다. 저기 봐라, 하고. 어머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늘 근사한 풍경이 있었다. …… 형이 성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입고 있던 후드티를 벗어 성규에게 입혀주었다. “선물이야. 이만큼 크라고. 쑥쑥 커서 이거 입으라고.” 그날 성규는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시소에 앉아 있었다. 해가 질 때까지. _ 느긋하고 편안한 여덟편의 소설.열 다섯 전후의 청소년, 배구, 만물트럭, 꽈배기, 생일, 할머니, 엄마 그리고 엄마의 부재, 꿈, 사고…… 겹치며 등장하는 소재들 덕분에 떨어져있는 이야기지만 하나의 세계 안에 포근히 든 것 같다. 그 안에서 저마다 다르고, 다르지만 ..
단 한 번의 삶 61. 모든 부모가 언젠가는 아이를 실망시키고, 그 실망은 도둑맞은 신발같은 사소한 사건 때문에도 비롯된다는 것, 그 누구도 그걸 피할 수 없고, 나처럼 어떤 아이는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그 사소한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기억하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이해하면서도 아쉬워한다. / 그렇지만 그게 부모를 증오하거나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누군가를 실망시킨다는 것은 마치 우주의 모든 물체가 중력에 이끌리는 것만큼이나 자명하며, 그걸 받아들인다고 세상이 끝나지도 않는다. __대신하는 문장. 천 개의 강에 비친 천 개의 달이 있다. 천 개까지 아니어도, 열 개의 나라도 찾으려들면부모라는 강부터 건너야 한다. 어린 시절의 나, 내 안의 어린 아이, 부모로 부터 뻗어나온, 부모를 돌아보아야 하는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