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립풀 런던
오래전 런던 여행의 마지막에 내셔널 갤러리가 있었다. 정말 그랬는지, 여행을 준비하던 나의 바람이었는지 이제는 흐릿해진 장면들만 남은, 그 마저도 자꾸 증발하는 중에도 미술관에 대한 기억은 아직 선명하다. 건물의 기둥, 계단을 숨차게 올라 거대한 문 안으로 들어설 때 그곳의 포근한 공기, 볼륨을 낮춘 발걸음 소리, 실제로 보니 사진에서보다 무지 작아 놀란 작품, 고전 미술이라는 작품들을 잔뜩 가지고 원하면 얼마든지 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시샘, 다 돌아보고 싶은 조급함, 문이 닫도록 한 곳에 오래 머물며 나를 새겨 놓고 싶던 무거운 발걸음, 벨라스케스 특별전을 놓친 가벼운 지갑, 그런 기억들. 로또가 되면 뭘 하고 싶냐고 물으면 그러면 나는 훌쩍 그곳으로 가 한 달 동안 날마다 들락거리고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59. 나는 별 필요도 없는 긴 이야기를 시작해서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말하며서 길게 끈다. 어느 누구보다도 형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고, 형도 그걸 너무 좋아하고, 나도 그걸 매우 즐기기 때문이다. __ 오늘의 점심 메뉴, 길에서 본 어떤 장면, 책에서 읽은 문장 때문에 떠올린 생각, 카톡으로 전해들은 황당한 소문, 반쯤은 알아듣지 못하는 각자의 직업 관련한 일들, 쿠폰으로 사 마신 커피, 일하면서 만난 사람, 깜박하고 빼먹은 약.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세세하게, 나의 감정과 감상을 더해가며 길고 긴 이야기로 하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러고 싶은 사람이 있다. 가라앉은 마음을 돌보려고 분주하게 떠들게 되는 시간. 그가 형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병에 익숙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