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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발명 신간으로 나오자마자 구입해두고 기다리던 여행을 위해 아껴두었다가 비행을 기다리며 첫 챕터를 읽기 시작해 여행의 마지막날 이른 아침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좋아, 완벽했어. 삶에서 나아감이란 알고 있었거나, 모르지 않던 것을 내 목소리로 인정해나가는 과정을 살 때 벌어지는 일이다. 애써 의식하거나 기꺼이 수고하지 않으면 그 과정을 실감하기도 실은, 쉽지가 않지만. 나를 위해 한 마디를 보태자면 이치와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는 의무를 새기기보다, 어차피 평생을 배워가야 하는 일이며 완성은 없다 여기자 하고나면 할 만도 한 것이다. 정혜윤 작가의 글은, 이야기는, 여러 번 말하는 것 같지만 나를 세상 속으로 끌어낸다. 나를 나의 세상 밖으로, 그러니까 당신들의 세상 속으로 끌어낸다. 나의 세상에 갇혀있다 여기지..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정세랑, 재밌는 이야기로 돌아오다. 길고 긴 여정에 절대로 식지 않을 애정으로 함께 따라 나선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나야나)
삶의 모든 색 이 책의 아름다움은 빛을 머금은 일러스트 자체에 있고 그림과 손잡은 문장들이 하나같이 우리 자신이라는 데 있다. 정말 아름다운 책이야.
미지의 걸작 김영하 작가가 들려준 발자크 평전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들던 차, 리스본의 책장에서 발견하고는 데려왔다. 표제작보다는 이 좀 더 재미있었다. 굴러떨어진 게 머리라니. 웃기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고, 역시 ‘재미’ 라는 건 양극을 달릴 때 극대화되는가 싶다. 소설이 재밌으면 읽고 나서 하고 싶은 말이 자꾸 생긴다. 한 편의 근사한 작품이 긴 여운으로 순간마다 영감을 불어넣듯이. 다들 훌륭하다 하는 인물에 대해서라면 미묘한 반감부터 가지면서도, (그래서 궁금하지만 바로 다음날 책을 사지 않았지. ) 발을 걸치고 나면 이렇게 쉽게 또 넘어가는 세상 쉬운 독자가 나다. 참나.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가능성은 막연한 미래의 일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희망이다. 과학의 영역에서 인간의 아름다운 변화와 적응을 서정시로 노래하는 문학같은 책. 김초엽의 소설로 충분히 예습(?)이 된 느낌.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뇌의 신비로움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명확함과 손에 잡히지 않을 무한함 사이를 경계없이 넘나드는 신비. 얼마전 아이가 부상을 당하고는, 크게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을 할 때, 내가 그랬다. 우리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고 대단해. 괜찮을 거야. 잘 나을 거고. 너의 몸을 믿고, 나을 수 있게 잘 쉬어보자. 그날의 그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단한 우리다.
눈부신 안부 이번 소설의 제목은 내가 느낀 백수린 작가를 담았다.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고개를 기울여 조금은 반짝이게 보이는 각을 찾아 그 때를 그 공간을 문장으로 다듬고 이야기로 엮는다. ‘파독간호사’는 다른 누가 뭐라든 내게는 용감한 여인들이었다. 슬픔을 전제로 한 단어들로 설명한들 그랬다. 독일로 간 사람만 그러할까, 여인들만 그러할까. 터전이라 여기는 곳을 뒤로하고 짐을 싸 밀고 나서는, 그 틈에 희망과 다정함을 잊지않고 챙겨 나서는, 과거가 된 그리고 미래가 될 삶은 모두 용기이지. 희망도 다정함도 스스로에게 먼저 건네기로. 그래도 좋겠다. 이모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은 푸근하다. 엄마랑은 다른 따뜻함이 있어. 나의 이모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촉진하는 밤 소설을 읽을 땐 등장 인물 중 하나가 되지만 시를 따라갈 때면 나는 시인이 된다 감히 희망하지 않던 인물이 된다 그 착각의 순간이 벅차 줄래줄래 자꾸만 뒤를 쫓는다. 시인이 지어놓은 문장들을 징검다리 삼아 내가 뛰어넘는 건 이 편에서 저 편, 여기에서 저 위. 모른척 않고 안보다 더 깊은 속으로. 끊이지 않고 계속 시를 읽는 사람은 결국 시인이 되어버리려나. 아니지. 그건 너무 시인답지 않은 시인이 되는 법인 걸. 그치만 시를 읽은 후엔 내 모든 문장들이 사랑스럽다.
지극히 낮으신 로마에서 페루자로 달리던 기차에서 작고 하얀 아시시를 멀리 두고 보았다. 어딘가 묵은 사진 폴더에 하얀 벽돌 사진이 있을텐데. 당시의 피곤함, 긴 시간 이동하며 쌓인 여독을 잠시 모른체하며 미뤄두는, 그래서 언제 또 그곳을 찾게될지 모르니 힘을 내어 걸어보는, 성실한 여행자의 노련함도 경험을 풍요롭게 부풀릴 호기심도 그 시절의 나에겐 없었다. 이후로 종종 책, 그림, 흘러드는 이야기 속에서 아시시를 만나고 그 때마다 아쉬움이 들곤했다. 그 기차에서 내렸어야 했는데. 목적지 도착 시간이 조금 늦어지고, 두 배로 고단했겠으나 이후의 순간들에 얼마나 많은 감동이 덧입혀졌을까. 가지 못한 길은 영원한 아쉬움이 되어 어떤 기억보다도 강렬하게 살아남는다. 프란체스코 (오늘 설교에도 등장! ) 한 사람의 생애가 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