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그 화려한 식물들이 때에 따라 얼고 마르고 죽어가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투명하게 빛나는 이 유리 온실은 어쩌면 자연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없앨 수 없는 이유도 자명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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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여러장이다.
궁의 지도, 온실을 열고 들어서 둘러본 장면, 원서동 골목길 그러다 바다가 보이는 석모도에 다른 대륙으로 이르는 항로까지 그리게 된다. 뼈를 품은 흙의 먼지를 일으켜 들여다보다가, 바다를 품은 길을 멀리서 내려다보게 된다.
책의 끝에
이 소설은 허구이며 이러저러한 일은 사실이 아니라 한다.
‘사실’이라는 단어를 펼쳐두고 발굴한다면
이 소설은 당연히 존재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역사 속 일본인은 적이라 새기며 자랐고, 일본인 이름은 내내 입에 붙지 않아 한 사람의 이름도 단번에 읽어내지 못했지만. 그 시절 이 땅에 ‘남겨진’ 일본인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음에 크게 놀랐다.
삶이란 바라는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깨달아가니, 지금에야 놀란 것은 당연한 사실이 되려나.
악인이 어디에나 있고, 동류라 하여 모두 악한 것은 아니다. 악하지 않다하여 반드시 선한 것도 아니고.
감추고 숨기어도 결국에는 투명하게 드러나는 새삼스러운 인간의 민낯을 본다.
나는 어느쪽도 아니라 말할 수 없을 것같아.
기억하지 않던 자리에도 누군가는 살아가고 있었고, 그 역시 자신의 몫을 살아낼 뿐이었다.
낯선 삶에 얽힌 이야기로 기억을, 역사를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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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히 기도하며 격하게 펭귄을 아끼는
능숙한 식물 집사이자 용감한 탐험가인
멋짐 넘치는 작가님의 걸음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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