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이야기/2024

(39)
리추얼 7. 재미있어야 내 인생이고, 의미있어야 지속가능하다. ___ 작은 일의 반복이 일상에 의미를 더한다면 그리고 그 의미가 나에게 ‘의미’있다면 누가 뭐래도 리추얼이다. 작은 일을 기다리고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반복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 나는 소소한 행복 추구위원회의 멤버로서 책의 유명세를 빌어 우리 위원회의 회원이 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 중이다.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유명인들, 그들 사이에 있으니 몰라도 알 것 같은 이들의 긴 시간을 채운 리추얼들은 결국 한 사람을 살게한 반복된 일상이다. 행복까지는 각자의 몫이나, 그들 역시 마지막엔 자신의 의미 있는 일상에 ‘감사’하지 않았을까. 재미있는 인생을 선택하고 의미있는 삶이 되도록 성실을 다하면 무지 멋있는 사람이 되고마는 것이다. ___ 어느 때는 ..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마음 속에 넘쳐나는 말들이 혼자 되내이고도 남아돌아, 생각의 속도 말의 속도 글의 속도가 뒤엉킬 때, 아무런 상관않고 편지할 이가 있다면. 생의 축복이다. __ 사랑을 사랑답게 하는 건 기울어진 마음의 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쪽이 얼만큼 더 기울었는지는 사랑하는 사이조차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랑은 과장되고 격앙되며 희생이 강요되니 극적이다. 다른 사랑은 가만하고 긴밀하며 정성이 필요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어떤 사랑은 밑 빠진 독에 붓는 물이고 다른 사랑은 새어나간 물이 살살 내어둔 물길이다. 특별한 사랑이고 보통의 사랑이다. 사랑은 평생의 화두. 문득, 언제나 사랑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각각의 계절 68. 반희는 이 순간을 영원히 움켜쥐려는 듯 주먹을 꼭 쥐었고, 절대 잊을 수 없도록 스스로에게 알려주려는 듯 작게 소리내어 말했다. ___ 스스로에게 소리내어 말하던 때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스스로에게 꽤 다정하게 군 것이다. ___ 세상은 제각각이니 알 수 없는 게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니 신기하다. 가까이에 있을 것 같은 이야기. 너무 알겠는 이야기들. 나이 들어가는 일이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나이 혼자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억지로 젊고자 애쓰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숫자들만 별개로 번식하는 것 같을 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때도 별거없이 그저 나는 또 하나의 계절을 나고 있을 뿐인 것이겠지. 권여선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었다. 주인공의 나이가 몇일까 유독..
트립풀 런던 오래전 런던 여행의 마지막에 내셔널 갤러리가 있었다. 정말 그랬는지, 여행을 준비하던 나의 바람이었는지 이제는 흐릿해진 장면들만 남은, 그 마저도 자꾸 증발하는 중에도 미술관에 대한 기억은 아직 선명하다. 건물의 기둥, 계단을 숨차게 올라 거대한 문 안으로 들어설 때 그곳의 포근한 공기, 볼륨을 낮춘 발걸음 소리, 실제로 보니 사진에서보다 무지 작아 놀란 작품, 고전 미술이라는 작품들을 잔뜩 가지고 원하면 얼마든지 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시샘, 다 돌아보고 싶은 조급함, 문이 닫도록 한 곳에 오래 머물며 나를 새겨 놓고 싶던 무거운 발걸음, 벨라스케스 특별전을 놓친 가벼운 지갑, 그런 기억들. 로또가 되면 뭘 하고 싶냐고 물으면 그러면 나는 훌쩍 그곳으로 가 한 달 동안 날마다 들락거리고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59. 나는 별 필요도 없는 긴 이야기를 시작해서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말하며서 길게 끈다. 어느 누구보다도 형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고, 형도 그걸 너무 좋아하고, 나도 그걸 매우 즐기기 때문이다. __ 오늘의 점심 메뉴, 길에서 본 어떤 장면, 책에서 읽은 문장 때문에 떠올린 생각, 카톡으로 전해들은 황당한 소문, 반쯤은 알아듣지 못하는 각자의 직업 관련한 일들, 쿠폰으로 사 마신 커피, 일하면서 만난 사람, 깜박하고 빼먹은 약.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세세하게, 나의 감정과 감상을 더해가며 길고 긴 이야기로 하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러고 싶은 사람이 있다. 가라앉은 마음을 돌보려고 분주하게 떠들게 되는 시간. 그가 형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병에 익숙해지..
초급 한국어와 중급 한국어 12. 어떤 글이든 우리가 쓰는 글들은 일종의 수정된 자서전이에요. _ 초고를, 원본을 남기려 여기 저기 나의 생각이랄지 문장이랄지를 남기는 중인가 싶다. 수정과 개정이 죽는 순간까지 끝나지 않겠지만. 아무도 찾지 않을 자서전, 만듦새에 욕심내지 말고 일단 페이지라도 채워야할까. 누구도 찾지 않을 거라는 가정이 좀 슬프지만 나만큼은 수정을 위해 자꾸 들여다 보게 될 것이므로, 독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 자기 검열의 끝판왕이기보다 언제나 먼저 마음을 열던, 계속해서 쉬운 독자여야 할 터인데. 그 다정한 독자의 마음을 나에게도 주어야 할텐데. 세계의 한계, 마음이 그어놓은 선을 건너가고 싶은 소설이었다. 내 얕은 경험이 자꾸 한계인양, 우물인양 느껴져 글쓰기 위축되곤 하는데. 그렇다고 세계여행만이 답이 아니..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소설은 분명 있지만 잊고 있는 것을 깨우기 위해 정반대에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가까이 있기에 돌아보지 않는 것을 보여주려고 큰 숨을 몰아 쉴 때까지 멀리 돌아 걷게 한다. 발견하는 것도 스쳐지나가는 것도 읽는 사람의 특권이다 _ 요즘 청소년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작가라기에, 방학을 맞아 쓰윽 내밀어보려고 바로 대출했다.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각자 읽었지만 책장이 끝나가며 비슷한 반응을 보인 우리는 이 책을 함께 읽은 것이다. _ 주인공의 이름을 묻거나 줄거리를 술술 말하지 않아도, 읽고 돌아서서 정화되는 감정을 경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어떤 때는 온전하고 유일한 위로이다. 아이의 삶에 아름다운 문학이 남길 바란다. 방학답게 아직도 쿨쿨 자고 있는 무소속 청소년을 어째야 싶다가도, 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