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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2024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59. 나는 별 필요도 없는 긴 이야기를 시작해서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말하며서 길게 끈다. 어느 누구보다도 형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고, 형도 그걸 너무 좋아하고, 나도 그걸 매우 즐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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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점심 메뉴, 길에서 본 어떤 장면, 책에서 읽은 문장 때문에 떠올린 생각, 카톡으로 전해들은 황당한 소문, 반쯤은 알아듣지 못하는 각자의 직업 관련한 일들, 쿠폰으로 사 마신 커피, 일하면서 만난 사람, 깜박하고 빼먹은 약.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세세하게, 나의 감정과 감상을 더해가며 길고 긴 이야기로 하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러고 싶은 사람이 있다.
가라앉은 마음을 돌보려고 분주하게 떠들게 되는 시간.  


그가 형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병에 익숙해지는 이에게 필요도  쓸모도 없었는지 모르나, 비참하기보다 당당함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그 사실을 깊이 기억하게 할만큼 고마운 대화였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공기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의 10년이 담긴 이야기다. 이 책 한 권에 담긴 10년간 미술관의 경비원이었던 이의 기록은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그저 낯선 땅의 어떤 사람이 겪은 일일 뿐이지만 담담한 기록 속 장소가, 작품이, 사람이 하나하나 너무나 빛나는 이야기다.
끝나지 않기를, 조금 더 길게 이어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자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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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던 미술관들을 차례로 떠올리게 만드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찾고 골몰하고 싶어지는
예술의 순기능이 가득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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