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575)
전시 12. 그들은 누누이 그렇게 못 박았다. 뭔가 할 말이 있어야 한다, ……, 나는 주제, 바로 그것이 자신을 끌고 가는 것임을 몰랐다. 그것이 아무것에도 속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도. 세상에 나와야 하는 이야기들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나와 소리를 내야 하는 이야기라면 어차피 그 스스로가 자신을 끌고 간다고. ‘할 말’이 있어야 글이 가능하다는 가르침에 이제야 길들여 지는 중인데 눈 앞의 길을 파헤쳐 버리는 문장이다. 늘어놓은 단어의 배열을 가지런히 문장으로 읽어내었더니 그걸 뒤집어버리는 이런 순간, 환영이다. 잘해도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네. ___ 읽는 사람 프로젝트의 첫 과제. 새로운 시선이 고른 다양한 책을 경험하고 싶어 신청했는데 첫 책부터 새롭다..
음악소설집 10. - 어른이네. - 어른이지. 여기까지 읽고, 책을 잠시 엎어두고는 유튜브에서 ”love hurts” 를 검색했다. 킴 딜이랑 로버트 폴러드가 부른 영상은 오래 전 것이었고 아날로직한 음향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주 어릴 때 전축에서 흘러나왔던 것 같은 노래. 침대에 반쯤 기대 누워 선풍기 바람을 쐬며 노래를 듣다가, 내 귀를 의심하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안녕.” 이라고 했는데! 방금! 가사 지원이 되지 않아 바로 확인이 안되었지만, 굳이 노래를 멈추어 앞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빗소리와 섞이며 여름밤에 어울리는 곡이었다. 노래가 끝나갈즈음 다시 책을 펼쳤는데,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주인공이 나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안녕”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노래였다. ___ 나는 마음이 급한 사..
작은 책방 오래전부터 언제나 있어왔던, 간혹 잘 알 것 같은, 그럼에도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좋은 이야기들이 꼭 필요하다. 장마가 시작된 계절, 덕분에 조금은 경쾌하고 가벼운 시간을 보냈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 92. 왠지 모든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본질적으로 ‘그들’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것만 같다. 모든 순간이 ‘자신’일 수 있으니 역시나 디테일이 중요해. 보편의 사람들 속에서 어떤 한 사람을 그답게 하는 요인은 입이 닿은 자리가 겹치지 않도록 방향을 살짝 옮겨 컵을 들거나, 여름에도 긴 셔츠의 소매를 걷어입는 것, 작은 필통이나 화장품 파우치에 연필 한 자루를 넣어다니고, 물건을 고를 때 가장 먼저 찾는 컬러가 있는 것, 여러 개를 쌓아두기보다 하나만 고르는 순간을 맞는 것… 혹은 정반대의 모습들. 일부러 만든 습관과 모르는 사이에 몸에 든 모습까지 자신의 모습이다. 스스로가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그런게 궁금하기는 한지가 이런 문장에 꽂히게 만들뿐이고. 하지만 __ 93. 그 모든 인상은 그 순간에는 정확..
플롯 강화 145.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삶이 바뀌길 원하며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례를 보고 싶어한다. 때문에 성장 스토리는 언제나 사랑을 받고, 독자들은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품는다. __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글쓰기 책을 읽어왔다. 작가들의, 기자들의, 한국의, 외국의 글쓰기 안내서들을 참 많이도 읽었다. 그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말해왔지, 그만 읽고 이제 좀 쓰라고. 글쓰기에 관한 책들은 매번 재밌었으니, 그 중 한두가지 비법 정도가 내 안에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책들의 목적과 기능은 분명해서 읽는 동안 즐거웠다는 소감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고, 불편한 찔림이 자꾸 생겨나 글쓰기에 관한 책을 끊었다?!. ( 아주 냉정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 그런데 이 책이 왔다. 소설이나 ..
둘도 없는 사이 열 세살 소녀들의 시절이 계속해서 자라나 어른이 되어도 죽음을 지나도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다. les inseparables 아마도 영원히. ___ 보부아르의 글이 마침 궁금했고 번역이 무려 백수린 작가인데다 지나칠 수 없는 강렬한 빨간 표지까지. 받고보니, 커버 안쪽도 예쁨.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책도 있는 거잖아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39. 이 분자들의 동요는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한다 __ 정말 그랬다. 수많은 물리어 분자들의 동요에 나는 기꺼이 흔들리며 마지막 장까지 이 책을 읽어낸 것이다. 무려 자연과학 > 물리학 > 물리학 일반으로 분류되는 도서다. 내가 물리학 책을 읽다니. 보통 이럴 땐, 물리 교과서 이후로 처음이야, 라고 말해야 하지만 학교 다닐 때 물리 교과서를 끝까지 읽지 않은 사람으로서…… __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규칙하게 조각났다. 앞으로 선을 그리며 나아가는 시간이 아닌, 지금 여기의 혼재하는 시간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세상를 바라보는 시각의 해체. 한 번 흐트러진 세상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 사실 마저 무지하게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책. 어느 문학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해서..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201.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다시 읽으면 또 발견될 게 뻔한 오타와 비문을 걱정하기보다 일초라도 빨리 그 사람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간절함이 묻은 편지가 있다.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심정을 나는, 안다. 긴장하지 않고 느슨하게 읽어 내려가다, 이 즈음부터 속도를 내게 되었다. 한눈에 끌리는 무엇인가를 감지하거나, 모른척하던 마음(내 마음이든 상대의 마음이든)을 있는 그대로 감각하는 일은 대단한 발견으로부터 시작되기보다 용기있고 솔직하게 인정함으로 비롯되는 것이다. 살아갈수록 그토록 필요한 순간인데도, 오늘의 책임 혹은 이미 길들여진 일과 뒤에 숨느라 드문 사건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도 아닌 문장을 바로잡는 이가 퇴고를 포기하고 보낸,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