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책읽기

(53)
이만큼 가까이 인간의 삶은 성장으로 채워진다. 성장의 방향이 꼭 위로, 앞으로, 오른쪽으로 향한다는 믿음에만 갇혀있지 않으면 어떻게든 자라난다는 사실은 신비로움이다. 결국 살아진다. 디테일이 근사하지만 쓸데없는 상상을 하는 일은 이런 삶에 꽤 도움이 된다는 걸, 노트에도 옮겨적고 여기에도 써둔다. 작가의 다른 장편들에 비해 초반에 좀처럼 책장을 넘기기 쉽지 않던 이유에 대해 생각 중이다. 실은 두 번째 시도만에 읽은 셈이니. (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인 미스테리. 소설은 재미있으며 정세랑 만세의 강도는 커지고 세지고 깊어만간다는!) 예고 없이 사라지는 사랑은 한 줄 한 줄 따라가는 내 손끝마저 절뚝거리게 만든다. 늘 진심으로 아프다. 버스에 탄 친구들의 표정과 시선이 저마다이고 어느 자리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 굳이 확인하..
명랑한 은둔자 책 제목을 보고 아이가 말했다 어디 숨어 있는게 즐거운 사람인가봐요. 아이의 말이 여러번 떠올랐다. 그 말보다 멋진 한줄평이 떠오르지 않네. 여러모로 마음에 쏙 드는 책인데, 사랑스러운 표지는 보고 또 보아도 최고시다! 그림, 제목과 작가 번역가의 이름이 적인 모양새까지 내 눈엔 한 편의 작품. 물론 글도 그렇다. 아름다운 글은 필자의 솔직함에서 시작된다. 선을 넘나드는 유머와 잘 쓰는 기술을 통과해 단단한 구조로 믿음을 주고, 특유의 통찰을 가감없이 보여 결국 독자-나- 자신이 스스로의 세계를 반대로 비추게 만든다. 전체를 하나로 모으고 잘 어울리게 다듬어내는 타고난 감각은 필자가 자기글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구나 느껴질 때 완전을 향하는 듯하다. 아름다운 글의 여정. 한 편 한 편, 긴 호흡으로 몰입..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책방은 좋지만 책방 할아버지의 말이라면, 시작도 하기전에 길어질까 걱정이 앞서고. 심지어 배경은 요양원. 하지만 제목에서 책이니 책방이니 하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레구아르는 책방 주인 출신의 할아버지를 만나 그 일을 시작하고, 이젠 책을 고를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우정은 경험을 공유하고 그로인한 감정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이들에게서 피어난다. 그래, 나이 그건 그냥 태어났으니까 따라붙는 것. 어떤 부모여야 할까에서, 어떤 어른이어야 하는지로 고민은 넘나든다. 이번에 깨달은 답을 하나 적어두자면. 말은 가능한 적게 하되, 어쩌다 하는 한 마디는‘멋지’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는 것! 읽은 책에서 인용을 하든, 그를 바탕으로 이미 멋진 문장을 낳든 어른다운 말은 멋져야 하는 것이다. 만들어낼 자..
그림과 그림자 그림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문장들을 그러모으는 즐거움. 가늠끈이 가운데 어디쯤 걸린 책이 십 년 만에 눈에 띄었는데 마치 과거의 내가 십 년 뒤를 위해 잘 아껴둔 것 같았다. (한 번에 읽기 아까운 책들을 다 읽지 않고 남겨두는, 나만 아는 흔적이 남아 있었어…) 그런데 또 난생 처음 뵙는 이처럼, 때마침 봄이 오고 있어 새로운 기분으로 5월 내내 읽었다. 언젠가 우연히 꺼내 들어 초판일을 거슬러 올라가며 또 십 년이 지났구나 하게되면 멋질 것 같다.
긴긴밤 밤을 함께 보내는 건 낭만적이야. 밤은 어둡지만 별이 있기에 함께 보낸 사이라면 자연스럽게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 어두운 시간과 적막을 통과하며 마음을 나눠지고, 반짝이는 순간의 위로는 꿈이 아니었음을 서로에게 증명하면서. 노든과 밤을 보낸 앙가부, 치쿠, 윔보의 이름과 ‘나’를 기억한다. 책을 처음 만나, 제목을 보며 어떤 내용일지 상상하고 표지를 쓸며 부러 꾸며 짐작하기를 마음껏 즐기지만 그럼에도 시작하기도 전에 어떤 선입견에도 갇히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이 말은 해야겠다. 내가 읽은 이 이야기가 어린이문학상 타이틀을 단 책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물론, 놀란 이유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그저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를 생각하면, 너는 열 한 살에 이런 이야기를 읽게 되는구나 하며 부러운 마음이 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나이가 많건 적건 나이가 적지 않은 남자이건 아니건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건 잘 사는 일에 관심도 없건. 아무튼 곳곳의 다양한 사람들을 책장을 따라 넘어가며 바라보고 섰다. 문득, 다양하다는 표현을 그동안 내가 제대로 사용한 걸까 돌아본다. 어떤 일을 바로 잡느라 말이 길어질 때면 늘 등장하던 단어. 화려하거나 소박하기보다 다른게 당연하지 하고 말하기보다 다양하다는 건 그저 끝이 없음이 아닐까… 한다. 내 주변을 스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공기를 만들어낸다. 그대로 떠가기도, 이해하려 의도하지 않았으나 나를 그의 마음 아래에 서게 만들기도 한다. 각자의 삶을 살면서도 연이어 관계를 맺고, 그 관계의 끝을 다 알고 있는 듯한 얼굴로 살아간다. 여러번 멈추어 그들의 자리에 서게 된다. 평생 잊지 못할 ..
복자에게 김금희 작가의 책을 연달아 읽었다. 아이와 도서관을 다녀왔고, 책을 한 짐 쌓아두고 각자의 음료와 달달한 것들을 앞에두고 앉아서였을까. 복자를 만나 걸으며 섬에 스미는 영초롱의 시간이, 소녀들에게 일어난 그 시간이 낯설지만 진작에 정해진 운명처럼 설렜기 때문일까. 소설 일기의 기점인 50쪽까지 내리달리게 되었고, 울리는 타이머를 모른척 넘겼다. 편지가 주는 애틋함을 사랑해. 소설에 등장하는 편지들은 한결같이 그 애틋함을 키운다. 가끔 … 이렇게 세상을 몰라서야, 하며 나는 준비가 덜 된 어른이라 생각하곤 한다. 사람이 180도 바뀌지 않고서야 앞으로도 그런 준비는 착착 이뤄지기 어렵겠지. 관심. 편지가 부쳐지지 않더라도 쓰일 수는 있는 것이니.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단편집, 소설집 말고 ‘짧은 소설’이라고 적혀 있다.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데 그만의 결이 느껴진다. 마음에 들어. 연이은 요즘 사람들 이야기 중에서 가장 무리없이 다가온, 계속 궁금한 삶이다. 마침표를 확인한 뒤에야 끝이 아니라는 걸 더욱 실감하게되는 짧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