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526)
애도일기 1978.7.9. 이미 일어났었던 일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더 분명한 사실은 : 즉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일에 대한 두려움. 다름 아닌 이 두 사실이 궁극적으로 끝나버린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다 __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기록된 애도의 문장. 두려움은 제 몸을 먹으며 더 큰 두려움으로 번져간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지나간 일에 대해서도,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두려워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겪어야 하는 두려움의 총량이 있기도 할테지만 궁극적으로 약해지지 않을 힘을 구한다. 간절한 기도로. 정복하려기보다 전부가 아님을 몸으로 깨닫길 바란다. __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삶을 갈무리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발걸음이다. 무뎌지는 죽음은 있을지 몰라도 애도..
다 하지 못한 말 당신이 말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임의로 빈칸을 채워 넣어야겠다 싶었어 ___ 사랑은 공평하지 않아 사람은 변덕스러우니까. 그럼에도 변함없다. 지는 편 힘겨운 쪽 그 자리가 차라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은. 오랜만에 이별을 앓는 소설을 읽었다 짧고 강렬한 사랑의 반사. ___ 소설은 진해지고 작가님은 순해지는 것 같다. 여전한 응원과 사랑을 보냅니다.
만질 수 있는 생각 118. 단풍 물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고,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모두 가 볼 수는 없다. __ 갈래길이 펼쳐지는 장면은 흐린 날, 차가운 아스팔트 혹은 짙은 비포장 흙바닥의 황량한 이미지였다. 어느쪽을 선택해도 편하지 않을 것 같으며 두려운. 갈래길의 가운데 서서 몸을 돌려 세우는 일을 미루느라 그 황량한 장면이 더 길게 남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숲 속의 갈래길도 겁나는 구석이 없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나무가 있고. 그 나무 중에는 고대어를 하는 뿌리 깊은 이도 있을 것이므로, 이제 나의 갈래길은 숲 속으로 내어야겠다. 숲 속에는 두 갈래 길이 있고 몸은 하나이지만 가지 못한 길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즐겁게. __ 아름다운 작품의 탄생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즐겁지! 아이들을 위하는..
사라진 것들 62. “왜냐면,” 마야는 돌아서서 부엌에서 나가며 말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라서야.” ___ 한 편 한 편 은근한 매력이 좋았지만, 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다시 안 볼지도 모르는 연인에게 제일 좋아하는 그림을 남기는 식의 다소 어이없는 상황들, 상관없는 독자의 시선에서 뭐지?! 혹은 왜지?! 하는 설정들, 그래야 했나 싶은 순간들이 이상하게도 응 아니야를 외치면서도 등을 반쯤 돌린채 그럴만하지 생각되곤 했다. 어릴 때 나도, 헤어지자는 말을 하러 나간 날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던 아이템인 조끼를 건네던,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가 쇼핑을 하고 포장을 해서 입으라고 내밀었다. 그리고 그만 만나자고. 그는 어이없어 했지만 그것까지 하고 싶었던 ..
리추얼 7. 재미있어야 내 인생이고, 의미있어야 지속가능하다. ___ 작은 일의 반복이 일상에 의미를 더한다면 그리고 그 의미가 나에게 ‘의미’있다면 누가 뭐래도 리추얼이다. 작은 일을 기다리고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반복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 나는 소소한 행복 추구위원회의 멤버로서 책의 유명세를 빌어 우리 위원회의 회원이 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 중이다.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유명인들, 그들 사이에 있으니 몰라도 알 것 같은 이들의 긴 시간을 채운 리추얼들은 결국 한 사람을 살게한 반복된 일상이다. 행복까지는 각자의 몫이나, 그들 역시 마지막엔 자신의 의미 있는 일상에 ‘감사’하지 않았을까. 재미있는 인생을 선택하고 의미있는 삶이 되도록 성실을 다하면 무지 멋있는 사람이 되고마는 것이다. ___ 어느 때는 ..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마음 속에 넘쳐나는 말들이 혼자 되내이고도 남아돌아, 생각의 속도 말의 속도 글의 속도가 뒤엉킬 때, 아무런 상관않고 편지할 이가 있다면. 생의 축복이다. __ 사랑을 사랑답게 하는 건 기울어진 마음의 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쪽이 얼만큼 더 기울었는지는 사랑하는 사이조차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랑은 과장되고 격앙되며 희생이 강요되니 극적이다. 다른 사랑은 가만하고 긴밀하며 정성이 필요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어떤 사랑은 밑 빠진 독에 붓는 물이고 다른 사랑은 새어나간 물이 살살 내어둔 물길이다. 특별한 사랑이고 보통의 사랑이다. 사랑은 평생의 화두. 문득, 언제나 사랑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각각의 계절 68. 반희는 이 순간을 영원히 움켜쥐려는 듯 주먹을 꼭 쥐었고, 절대 잊을 수 없도록 스스로에게 알려주려는 듯 작게 소리내어 말했다. ___ 스스로에게 소리내어 말하던 때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스스로에게 꽤 다정하게 군 것이다. ___ 세상은 제각각이니 알 수 없는 게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니 신기하다. 가까이에 있을 것 같은 이야기. 너무 알겠는 이야기들. 나이 들어가는 일이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나이 혼자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억지로 젊고자 애쓰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숫자들만 별개로 번식하는 것 같을 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때도 별거없이 그저 나는 또 하나의 계절을 나고 있을 뿐인 것이겠지. 권여선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었다. 주인공의 나이가 몇일까 유독..
이처럼 사소한 것들 20. 가끔 펄롱은 딸들이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걸 보며 - 예배당에서 무릎 절을 하거나 상점에서 거스름을 받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 이 애들이 자기 자식이라는 사실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진한 기쁨을 느끼곤 했다. 27. 말은 그렇게 했지만 펄롱은 다른 아이들이 그토록 반기는 것을 겁내는 자기 아이를 보니 마음이 아팠고 이 아이가 용감하게 세상에 맞서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__ 괜찮다, 별 것 아니다라는 빈 말들이 그렇지 않은 순간들에 성급하게 튀어나와 내 앞에 쌓인다. 나를 거스른 말들은 큰 덩어리가 되어 밤이 될 즈음이면 잠으로 가는 길을 막는다. 대단하지 않다 여기고 대충 그렇게 넘어간 것이고 괜찮기를 바라며 애써 그리 말부터 한 것이다. 말의 힘을 믿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