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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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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습하고 뜨거운 이 땅의 여름을 지나며 이 소설이 만들어낸 그늘과 나무 숲의 건조한 바람이 피하기보다는 그저 지나라고 하는 것 같다. 여름이면 왜 이 소설을 떠올리는지 읽고 추천한 이들의 마음을 알 만하다. 지식의 부족함으로 한껏, 양껏 상상하며 내 머리속에 설계도를 그려내지 못해 발을 동동 아쉬움이 크다. 여름 별장도, 국립현대도서관도 방하나 책상 배치 하나 놓치지 않고 짚어가며 그려내고 싶었는뎅... 전문직 종사자들의 자기 얘기를 듣는 즐거움이 있다. 건축가들의 작업을 보며 뜻밖에 연필의 매력(?)에 먼저 빠져들고 마는데… 들여보다면 멋짐 없는 일이 어디 있겠냐 싶지만, 자기 일을 사랑하고 그래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부하는 이들에게 보내고픈 경외가 있다. 그 걸 들여다보는 재미로 책을 읽는지도. 여름은..
오늘의 단어 키키의 사진을 종종 본다. 키키는 말을 할 것만 같은데, 사실 키키는 말 말고도 할 줄 아는 게 많지. 몽글몽글 그림도, 읽고 난 내 마음도 그렇네 여름부터 시작하는 거, 나 역시 마음에 들었어.!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를 잘 해야하는 학생이었다가, 좀 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응, 아니야를 깨닫게 될 즈음에 다른 이에게 공부를 하라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깔깔깔, 현실 웃음 터지는 도입부를 지나, 기분좋게 소소한 공부 기술을 배웠다. 사실은 대학 신입생들을 위한 책인가 싶었는데 (물론 읽는 내 마음에 달려있다 생각하지만) 약간의 머쓱, 꼭 공부라 한정짓지 않으면 사는데 유익한 방법들로 나의 으쓱을 도우려나. 문득, 자식의 공부(실은 성적)에 열 올리는 부모가 떠올랐다. 살면서 공부에 대한 자기 안의 깊은 열망을 발견하고, 심지어 진짜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 바로 그 분이 찾아왔는데… 서른 마흔을 넘기며 등장하는 바람에, 체력도 달리고 용기도 얼마 안 남은지라 그 귀한 열망을 자식에게 투사해버리는, 간단하고 쉽게 허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철학에 관한 많은 책을 시도했으나 이 책만큼 같은 속도로 끝까지 읽어낸 적은 거의 없었다. 소피의 세계 다음으로 이 기차를 타시라. 탐나던 굿즈를 손에 쥐고, 결국은 기차에 올라 창 밖의 풍경이 열 네번이나 달라지는데 나는 매번 진지해져만 갔다. 마지막 장에선 부모님과 통화한 직후에 읽고선 더욱. 전반적으로 즐거웠다. 에피쿠로스가 정말 내 스타일이라면서 무릎을 쳤다고 생각했는데, 책장을 처음부터 넘기며 밑줄친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마음에 들던 구석이 다들 하나는 넘고도 남는다. 구성과 이해를 돕는 설명, 전달이 그렇게 되었다는 걸 증명하는 번역 모두 좋았가. 2주동안 집중하고 (관심을 두고) 꼬박 꼬박 읽었는데, 김영하 북클럽에 참여하고 싶기도 좀 더 느리게 볼까 싶기도 했다. 철학은 어려운 존재인데, ..
필경사 바틀비 암울한 소설이나, 끝까지 읽은데다 심지어 바틀비를 기억도 하게 생겼다. 우리가 즐겨듣는 라디오 ebs 북카페의 월요일 코너에서 마침 최민석 작가님이 선정해 들고 나온 책. 반가운 아이는 문자를 보내라 재촉했고, 그 문자는 소개가 되었다 ㅎ 책을 읽고 이야기에 물드는 시간도 물론 소중한데, 책 덕분에 일어나는 여러 일들은 나와 아이, 나와 너의 공통의 경험이 되며 더 신난다. 이 또한 내게는 책이 주는 즐거움.
오늘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과거와 현재를 나눠가진 여자와 남자, 남자와 여자의 두 사람만이 (두 사람이니까) 알 수 있는 필연적인 사정을 보는 것이 좋았다. 거의 예상대로 살아지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날이 더 많지만 침대로 들어갔을 때 막상 그 날이 밤을 따라 흩어진다 생각이 들면 아까운 마음에 감사노트에 적을 문장을 부랴부랴 늘이고만다. 그런 마음을 모아 놓은 소설이 아닌가. 작가들은 사람들의 감정 위를 살얼음처럼 살피며 걷는 가보다. 물론 조심스럽게, 하지만 발을 디딜 수 있을만한 꼭 필요한 자리를 놓치는 법이 없다. 아는 척을 해도 좋을, 아니 꼭 기억해두어야 할 자리를 놓치는 법이 없다. 근사한 사람들이다.
참담한 빛 왜일까 제목을 알면서도 내내 찬란한 빛이라 생각하며 읽었다. 이 소설집 다시 읽는다면 분명 다르게 읽힐 것 같아 부러 여운을 남겨두고 싶을만큼. 도 읽어 보았는데 읽는 동안의 나는 그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탄다. 나는 그 불빛이 무서워 눈을 꼭 감았다. 어둠보다 무서운 것은 그 무럽, 빛이었으니까. 로베르를 보낸 뒤 처음으로 ㅇ루었어요. 아이처럼. 호숫가의 한가운데, 희미한 빛의 한복판에서요. 언젠가 자신에게도 삶이 우호적이었던 때가 있었다. 꿈을 꾸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던 달콤한 날들도 분명 존재했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자라면서 수없이 많은 장래 희망을 적어보았지만, 과학자는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어렸을 때는 물리 때문이었고, 더 어렸을 때는 아인슈타인 우유에 그려진 대표 과학자의 헤어스타일 때문인 듯 한데… 세상에 무해한 별종이거나 얼마나 어려운 공부를 하는지 알아듣게 설명하기도 힘겹지만 그조차 상관할 틈이 없는 머리가 엄청 좋은 이들. 지구의 가장 깊은 곳이나 멀고먼 우주의 한 점, 눈에 보이지 않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아야 겨우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비슷 비슷하게 꿈틀대는 것들, 역시 맨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식과 논리로 분명 여기 있기도 없기도 한 것들에 관여하는 이들. 과학자도 사람!. 이 책을 읽고는 당연한 그 얘기가 처음으로 와 닿는다. 그리고 어쩜 내겐 멀기만 했던 그 장래 희망은 미지의 세계에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