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하나의 눈송이가 태어나려면 극미세한 먼지나 재의 입자가 필요하다고 어린 시절 나는 읽었다. 구름은 물분자들로만 이뤄져 있지 않다고, 수증기를 타고 지상에서 올라온 먼지와 재의 입자들로 가득하다고 했다. 두 개의 물분자가 구름 속에서 결속해 눈의 첫 결정을 이룰 때, 그 먼지나 재의 입자가 눈송이의 핵이 된다. 분자 식에 따라 여섯 개의 가지를 가진 결정은 낙하하며 만나는 다른 결정들과 계속해서 결속한다. 구름과 땅 사이의 거리가 무한하다면 눈송이의 크기도 무한해질 테지만, 낙하 시간은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수많은 결속으로 생겨난 가지들 사이의 텅 빈 공간 때문에 눈송이는 가볍다. 그 공간으로 소리를 빨아들여 가두어서 실제로 주변을 고요하게 만든다. 가지들이 무한한 방향으로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어떤 색도 지니지 않고 희게 보인다. 그 설명들 곁에 실려 있던 눈 결정들의 사진을 기억한다.
_
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백가지의 이유가 있는데
눈을 마냥 사랑할 수 없게 될까 겁이 났다.
인선의 병실 밖으로 성근 눈발이 휘날릴 때.
눈이 내리지 않기를 바라다가
눈위로 스며들듯 누울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경하가 빛이 사그라든 길로 나아가야 할 때.
아름다운 눈이다.
자연을 설명하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담아내는 문장이 아름답다.
자연이 가진 힘은 이렇게도 힘이 된다.
이렇게 내리는 눈이라니,
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백 한가지의 이유를 갖는다.

'책이야기 > 20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먼 산의 기억 (0) | 2025.03.31 |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0) | 2025.03.27 |
게으름에 대한 찬양 (0) | 2025.03.20 |
소설가의 마감식 (0) | 2025.03.14 |
오이디푸스 왕 (0) | 2025.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