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내 성적은 3, 4학년이 될 때까지 중간 에서도 약간 처지는 편이었다. 그러나 숙부 또한 국어 산수만 잘하면 창가나 체조는 못할수록 좋다는 엄마의 통신부 보는 법을 무조건 따랐기 때문에 조금도 기죽을 필요가 없었다.
___
누구나 했던 말들이지만
엄마가 했을 때, 내가 괜찮아지는 말들이 있었다.
그럴 때는 엄마 덕분에 살기가 수월하기도 했다.
소녀는 엄마의 말과 행동을 지켜본다.
본대로 따르기도, 자신의 생각과 견주기도, 그저 보기만 하기도, 어긋장을 놓기도, 이해하기도, 떨어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엄마의 영향을 받으며 세상으로 나아갔다.
엄마의 의도와 상관없이, 스스로의 의지와도 상관없이.
자전적 소설의 시작이 무려 미취학 아동 시기 일 때부터다.
그 긴 시간의 구석구석이 기억에 남아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역사에 남은 하루 하루는 지금보다 훨씬 짙었겠구나 생각한다.
애쓰지 않아도 새겨졌을 시간이었을테다.
시골에 큰 집이 있었다. 명절이면 내려가곤 했던 어린 시절 경험 덕분에 완서의 천둥벌거숭이 시절이 마냥 더 귀여웠다. 풍으로 누워지낸 할아버지의 빼어난 외모와 할 말을 꾹꾹 눌러담아 일그러진 얼굴을 한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오랜만에 생각났다. 그분들에게 사랑받을 틈이 없었다. 큰 집에는 아이가 내 위, 아래로 여섯인데다 딸이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나와 동생은 그저 그 북적거리는 속에 섞여 놀기 바빴다. 시골은 그런 곳이었으니까, 섞여 놀고 섞여 먹고 섞여 사는 곳.
박적골을 들르는 동안, 사랑방의 창호지문 너머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가물가물한 사라진 옛말도, 처음 듣는 단어들도 낯설기보다 신선했다.
북적대는 대가족 안의 완서는 내 눈엔 늘 혼자였는데, 그 외로움은 선택인 것처럼 느껴졌다.
___
책꽂이 뒤편에 5권짜리 박완서 작품집이 있었고, 오래 기다리다가 문득 눈에 띄었다.
십수년 전의 나를 칭찬하며
역시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일단 사 두었다가 나중에 읽는 것이라는 성인의 말씀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바이다.
책이야기/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