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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2011-2015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저자
박준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12-0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박준 시인이 전하는 떨림의 간곡함!한국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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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마음 먹고, 아니 마음 열고 읽은 것은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시인들의 언어는 참 다르다.

나도 아는 말인데, 읽는 순간 그 말의 느낌이 그렇다.

부드럽지만 약하지 않다.

페이지 마다 넘치는 여백에 감정이 느껴진다.

 

시는 참 쓰기 어렵다던데

시를 읽고 있자니 거저 뭔가 얻어가는 기분이다. 

 

작가가 시를 썼기 때문이지만,

내가 그것을 시로 읽게 되는 경험이 소중하다.

 

젊은(?) 시인 박준의 이 시집은 '시집'을 시작하는 내게 아주 적당했다. 

 

 

올해의 두 번째 문장을 만난 시를 옮겨본다.

 

 

당신의 연음(延音)

 

맥박이

잘 이어지지 않는다는

답장을 쓰다 말고

 

눅눅한 구들에

불을 넣는다

 

겨울이 아니어도

사람이 혼자 사는 집에는

밤이 이르고

 

덜 마른

느릅나무의 불길은

유난히 푸르다

 

그 불에 솥을 올려

물을 끓인다

 

내 이름을  불러주던

당신의 연음 같은 것들도

 

뚝뚝

뜯어넣는다

 

나무를 더 넣지 않아도

여전히 연하고 무른 것들이

먼저 떠올랐다

 

 

밑줄이 많았던 다른 한 편의 시.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른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누눌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자판으로 다시 읽어도 좋으다.

 

가느다란 기둥같은 시 안의 세상은 느리고 선명하다.

기둥을 쌓은 단어들 사이에 고스란히 담긴 슬픔이 이제 그만 슬픔을 걷어내도 좋다고 하는 것 같다.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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