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목소리가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소설이다.
내가 읽는건지 그가 읽는건지.
그의 글을 읽는 건지 그가 나를 읽어내는 건지 종종 선을 놓치고만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선
"남은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딱 여기까지 하고 말아?!" ... 라는 고민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주인공을 따라 가다가도 한껏 작가모드로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이 독특한 소설의 구조. 매력있다.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그렇게나 따지던 시점, 인칭의 구별이 사실 소설을 읽는데 뭐 그리 중요한가.
얼마나 의식하며 읽는다고. 아니 그런게 의식이 안될만큼 빠져 들어야 재밌.... ㅋ
물론, 작가입장에선 전달폭(?)의 노림수일지 모르지만
독자의 입장에선 사실 나와 나란히 읽어가는 존재가 '아무도' 이거나 '누군가' 인 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때가 더 많지.
암튼
느슨한 듯 긴 시간이지만 어제 일인 듯 촘촘한 연애사. 지적 호기심을 콕콕 자극하는 소재. 짧은'장' 과 같은 구성이 탄탄한 느낌과 더불어 안정에서 오는 희미한 기대를 부른다. 긴장이라고 해야 맞으려나.
아. 나의 이 생각들만 보아도 ( 내가 할 수 있는 가능한 많은 표현을 적으려는 것만 보아도 ) 그는 참 매력있는 작가구나.
올해의 첫 책으로 잡아들며, 좀 묵직한지라 이거 한 달을 꼬박 들여야 하는건 아닌가 싶었지만
알콩달콩 아니 우여곡절, 파란만장 역동적인 네 사람의 이야기는 두꺼운 세계문학의 시각적 무거움을 특수 종이 낱장의 가벼움으로 바꾸어 놓았다.
전혀 지루하지 않다. 분명 누구나 넷 중 하나엔 몰입하게 될테니, 아님 넷을 호방하게 넘나들며 누구에게든 남다른 재미를 줄 듯 싶다.
프란츠마저 등장하고나서는 속도가 붙는게 아까웠달까.
그렇게 시작한 올해의 첫 소설에서 올해의 첫 문장을 만났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사랑이란 말이야... 하는 말 줄임표 뒤에 줄 서 있는 수많은 은유들.
지금, 그리고 이전에 내가 머리에 떠올렸던 키킥거릴만한 꺼리들.
모두 사랑을 품을 만 하다.
멋지다.
시작이 거창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시작부터 남모르는 의미를 품을 수도 있다.
단 하나의 은유가 그렇듯이. 이것이 더욱 '사랑답게' 만든다.
짧고 단정적인 문장인데, 은유의 매력을 쫓아보면 경계가 모호한 오로라의 다채로운 빛을 따르는 문장으로 와 닿기도 한다.
팟캐스트 빨간책방에서 이동진 님도 같은 문장을 꼽았다.
왠지 낯설지 않음이 느껴졌달까.
연애소설?,
결코 가볍지 않은 그들의 연애와 사랑이 흠뻑 칠해진,
그래서 더욱 참을 만한 것이 사람 이야기.
테레자의 거울과 프란츠의 책상이 내게 흔적이 되었고
두 장의 메모가 남겨졌다.
마흔이 되어 읽는다면 무엇이 남을까.
(새로 읽고 싶은 책도 많은데,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 쌓이는 건 어떻게 해야하나.)
내려 놓기 아까운 책이다.
201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