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그때 어머니는 대답해줬어요.
그렇지 않다고.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할 거라고. 단지 아주 뿌옇게 될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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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소멸이 정해진 미래를 알게 되었을 때
삶으로부터 도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미래의 일부와 모서리쯤이 닮은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올것이 왔구나 하며 지레 뒤로 넘어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그런 것들을 알아내려고,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하려고
날을 갈며 시간을 보낸들 피할 수 있을까.
피할 수 없고,
즐기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는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인정하라는 요구에 맞서기란
버거운 일이다.
잠을 자고 일어나 먹고 마시며,
내 몫의 일을 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걷는.
현재를 실감하는 것 밖에.
오늘을 살아낸다.
답을 기다려야 하는 질문들을 그만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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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희랍어 시간> 과 단편 <회복하는 인간> <파란 돌> 두 편, 다섯 편의 시와 산문이 담겼다.
아껴 읽는 즐거움.
작가의 목소리에 담긴 숨은
새벽 안개가 차지하는 여백이구나, 비오는 숲에 낮게 가라앉은 물기어린 기운이구나.
단 한사람의 눈에 든 혼이구나 한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읽는 동안 주인공의 감정에 휘말린다.
감정이란 시간을 따라 점점 휘발되는데도
종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나,
어두운 계단에서 안경을 밟는 장면들은 선연하다.
한강의 작품을 읽게 되어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