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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2023

어슐러 K. 르 귄의 말

작가의 이름을 제대로 말하게 되기까지 여러 차례 혀꼬임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책 소개라도 하는 날이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천천히 또박또박 연습을 하고 이름을 되내었다.
언제나 애정담아 정성껏 그 이름을 부르지만,
여전히 부를 때마다 한없이 낯선 이름.


내 이름은 하나인데, 나를 부르던 이름들은 제각각의 소리를 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나는 사춘기
시절부터 ‘이름’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가늘고 긴 선이 되어 내 머릿속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이름에 대한 생각들. <어스시의 마법사>를 읽었을 때는 아마도 그 선이 가장 팽팽해졌을 때가 아닌가 한다. 마지막에 마법사의 진짜 이름이, 그러니까 그 순간이!!!
재미있는 이야기이고, 상상하고 또 상상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훌륭하지만, 그 작품은 오랫동은 혼자 바라보던 ‘이름’의 이야기를 하며 나를 달래주던 소설이었다.

이 책은 판타지 문학의 전설인 작가의 소설, 시, 에세이에 대한 세계관을 작가 자신의 말을 통해 들려주고 있다.
총기가 반짝이는 눈빛에 반하여 호기심이 일다가, 밑줄 그은 말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데 모두 담아내지 못하는 미천한 이해력을 탓하다가, 그래도 올해는 이 작가의 책을 몇 권 더 읽어봐야겠다고 가볍게 다짐하며 마무리.

동화를 배울 때부터 이야기는 스스로 작가에게 찾아오는 것이라는, 계시 같은 아니 주문 같은 말을 들어왔다. (그 말은 환영할 일이 여적 없는 이에게는 절망이지만, 나랑은 상관없다 치면 이야기에 대한 낭만을 증폭시키고도 남았다.) 작가의 소설들은 그렇게 쓰인 것이 분명하다. 이야기가 제 때, 그에게 도착해서 다행이다.

그의 시도 읽어낼 수 있는 품이 나에게 생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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