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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2021

책에 바침


아, 이 책은 사서 읽고 책꽂이에 따로 모아둬야 하는 ‘책에 관한 책’이잖아.

짐작못한 바 아니었으나, 도서관 신착도서에 막 자리잡은 이 책을 못본체 지나칠 수 없었다.

술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특히 글 좀 쓰는 사람들로 하여금 책에 관한 책 내지는 책을 소개하는 책을 쓰게 만들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온갖 책을 읽어대다 한 번씩 지칠때면 이런 책을 손에 들고 슬슬 넘겨 읽으며, 역시나 내 사랑이지 내 길이 여기지 맞아 그렇지 하고는 흔들리는 마음을 달래 앉히며 쉬어가게 만드는.
다시 쌓아둔 책들 앞으로 걸어가 책등을 만지며, 넘치는 애정을 표현하고자 새 주문을 하게 만드는.

빠질 수 있어 영광인 술수다.



얼마전 동네에 화재가 발생하여 급하게 현관 밖으로 뛰어나간 적이 있었고, 다시 들어와 책방 앞에 섰을 때 그 중 한 권도 뽑아나가지 못해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달려 나가는 순간에 생각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고, 다른 집이 아니었다면 더더욱 그 재난앞에선 무력할 수 밖에 없음을 (오히려 재난의 제물이 되겠지) 새삼 깨달았고,그럼에도 그 깨달음이 당장은 아무것도 달라지게 하지 못할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 후에도 한 권씩 두 권씩 책은 쌓이고 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책들과 떨어지는 날이 온다면 그 날은 통곡이 아닌 세계의 단절에 놓여있지 않을까. 상상하고 싶지 않아.


타면 안되지만 젖으면 안되서 스프링쿨러도 안돼.
책을 쌓아두며 나만의 도서관을 갖는다는 건 대단한 행운을 바라는 일이었네.
오늘 이 순간까지 너무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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