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혜윤

(3)
삶의 발명 신간으로 나오자마자 구입해두고 기다리던 여행을 위해 아껴두었다가 비행을 기다리며 첫 챕터를 읽기 시작해 여행의 마지막날 이른 아침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좋아, 완벽했어. 삶에서 나아감이란 알고 있었거나, 모르지 않던 것을 내 목소리로 인정해나가는 과정을 살 때 벌어지는 일이다. 애써 의식하거나 기꺼이 수고하지 않으면 그 과정을 실감하기도 실은, 쉽지가 않지만. 나를 위해 한 마디를 보태자면 이치와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는 의무를 새기기보다, 어차피 평생을 배워가야 하는 일이며 완성은 없다 여기자 하고나면 할 만도 한 것이다. 정혜윤 작가의 글은, 이야기는, 여러 번 말하는 것 같지만 나를 세상 속으로 끌어낸다. 나를 나의 세상 밖으로, 그러니까 당신들의 세상 속으로 끌어낸다. 나의 세상에 갇혀있다 여기지..
슬픈 세상의 기쁜 말 거실창을 넘어 들어온 가을 볕이 목 뒤를 뜨겁게 데웠다. 비가 온 후로 날은 차가워지고, 밤 사이 스며든 한기가 좀처럼 쉽게 흩어지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빛이 있는 동안은 눈부심 때문에 멀리서만 바라보곤 했는데, 오늘은 그 시간에, 일부러 창가로 가 의자를 빼고 앉았다. 눈물이 터지려던 대목에서 매일 걸려오던 전화가 와 먹먹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고 다정한 웃음이 말을 걸어와 눈물은 흐르기보다 그저 눈가에 머물렀다. 슬픈 세상의 사람들이 나를 바꾼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삶을 지고도 어쩜 그리 평범한 듯 살아가는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들 역시 가장 좋은 모습이 바라는 대로 변했길, 가장 좋은 모습의 미래가 되었길 간절히 기도한다. 슬픔을 뚫고 지나간 아름다움이 ‘우리’를 낳았다. 울..
아무튼, 메모 해가 길게 들어오는 시간에 그림자가 길어지니 책장이 늘어나는 듯하다. 그림자 책장은 여백이 된다. 그림자처럼 까만 표지를 가진 노트를 열 권쯤 쌓아놓고 노트의 좌우를 번갈아보며, 돌아가는 연필깎이에 맞춰 덩달아 들썩이며 뭘 적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싶다. 정혜윤 작가의 글은 너무나 나의 취향. 작가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들에 빠졌었다. 이야기가 끝이 없는 그녀에게도. 망설이지 않고, 그냥 그 자체로 빠져도 되는 책의 매력을 알게 해주었고 그녀의 글을 다 읽고 나면, 좀 더 나은 사람이고 싶었다. 바람을 완벽한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 자격지심으로 한동안 멀리 했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더 나은 사람이고 싶다. 나의 문장을 남기는 일을 더이상 미루지 말아야지. 마음이 바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