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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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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62. “왜냐면,” 마야는 돌아서서 부엌에서 나가며 말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라서야.” ___ 한 편 한 편 은근한 매력이 좋았지만, 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다시 안 볼지도 모르는 연인에게 제일 좋아하는 그림을 남기는 식의 다소 어이없는 상황들, 상관없는 독자의 시선에서 뭐지?! 혹은 왜지?! 하는 설정들, 그래야 했나 싶은 순간들이 이상하게도 응 아니야를 외치면서도 등을 반쯤 돌린채 그럴만하지 생각되곤 했다. 어릴 때 나도, 헤어지자는 말을 하러 나간 날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던 아이템인 조끼를 건네던,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가 쇼핑을 하고 포장을 해서 입으라고 내밀었다. 그리고 그만 만나자고. 그는 어이없어 했지만 그것까지 하고 싶었던 ..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소설은 분명 있지만 잊고 있는 것을 깨우기 위해 정반대에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가까이 있기에 돌아보지 않는 것을 보여주려고 큰 숨을 몰아 쉴 때까지 멀리 돌아 걷게 한다. 발견하는 것도 스쳐지나가는 것도 읽는 사람의 특권이다 _ 요즘 청소년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작가라기에, 방학을 맞아 쓰윽 내밀어보려고 바로 대출했다.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각자 읽었지만 책장이 끝나가며 비슷한 반응을 보인 우리는 이 책을 함께 읽은 것이다. _ 주인공의 이름을 묻거나 줄거리를 술술 말하지 않아도, 읽고 돌아서서 정화되는 감정을 경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어떤 때는 온전하고 유일한 위로이다. 아이의 삶에 아름다운 문학이 남길 바란다. 방학답게 아직도 쿨쿨 자고 있는 무소속 청소년을 어째야 싶다가도, 책의..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정세랑, 재밌는 이야기로 돌아오다. 길고 긴 여정에 절대로 식지 않을 애정으로 함께 따라 나선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나야나)
눈부신 안부 이번 소설의 제목은 내가 느낀 백수린 작가를 담았다.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고개를 기울여 조금은 반짝이게 보이는 각을 찾아 그 때를 그 공간을 문장으로 다듬고 이야기로 엮는다. ‘파독간호사’는 다른 누가 뭐라든 내게는 용감한 여인들이었다. 슬픔을 전제로 한 단어들로 설명한들 그랬다. 독일로 간 사람만 그러할까, 여인들만 그러할까. 터전이라 여기는 곳을 뒤로하고 짐을 싸 밀고 나서는, 그 틈에 희망과 다정함을 잊지않고 챙겨 나서는, 과거가 된 그리고 미래가 될 삶은 모두 용기이지. 희망도 다정함도 스스로에게 먼저 건네기로. 그래도 좋겠다. 이모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은 푸근하다. 엄마랑은 다른 따뜻함이 있어. 나의 이모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섬에 있는 서점 서점에서 시작되는 모든 이야기에는 책장 냄새가 베어있다. 후각이 마지막 기억이라는데, 오래가는 이야기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 소설. 나는 이 책을 숲 속에 있는 서점에서 샀고,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의 향기가 책장에 베어있어 시작부터 짱이었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소설 속 주인공들은 내가 아는 사람들 같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반쯤, 아니 반 이상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이해하려 드는 순간 지는 쪽이 되고, 그마저 상관없어질 때 자연스레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데, 끝이 그리 나쁘지 않으니까.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여긴다. 가끔은 나의 적당한 거리 유지 주의를 너른 마음인양 착각하는 게 아닌지 자기 검열도 하지만, 그럴지라도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지. 상대가 얼마만큼 원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내 마음을 그 이해위로 겹쳐본다. 때론 공감으로 일하기도 하고, 감정이입일 때도 종종 있는데, 대상이 가까운 이들일 때가 주로 그렇이 다. 공감과 감정이입이 요즘의 화두. 타인을 향한 나의 감정을 내가 어찌 다루는지..
레이디 맥도날드 해피밀의 장난감을 구하러 자주 가던 정동 맥도날드. 이런 얘기를 어렴풋이 들은 것도 같은데 그이의 기억은 제법 구체적이었다. 소설을 읽고, 방송도 찾아보았다. 소설과 실제의 경계가 느껴지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 내뱉는 말들 손 동작을 읽고 또 보니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만 아는, 공감을 얻지 못한 세계를 지켜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름답다고 여겨 그렇게라도 지키려 든 것일텐데 그녀가 가진 방어막은 트렌치 코트 하나였다. 얇디 얇은. 나는 제 운명이지 자기 선택이지 하며 편히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무언가 조금은 해야할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 살고 있다면 나이가 든다. 노년의 삶을 떠올리는 것은 두렵지만, 그 시간으로 가는 지금, 나는 어떤 마음이든 품을 수 있다. 부디 나만의 세계를 누리되,..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 손바닥만한 햇빛이 거친 사포가 되어 살갗을 쓸고 지나간 것 같다. 볕과 빛은 밝음의 영역에 속할진데 태연한 어둠의 이면일 뿐이구나 한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