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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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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진하는 밤 소설을 읽을 땐 등장 인물 중 하나가 되지만 시를 따라갈 때면 나는 시인이 된다 감히 희망하지 않던 인물이 된다 그 착각의 순간이 벅차 줄래줄래 자꾸만 뒤를 쫓는다. 시인이 지어놓은 문장들을 징검다리 삼아 내가 뛰어넘는 건 이 편에서 저 편, 여기에서 저 위. 모른척 않고 안보다 더 깊은 속으로. 끊이지 않고 계속 시를 읽는 사람은 결국 시인이 되어버리려나. 아니지. 그건 너무 시인답지 않은 시인이 되는 법인 걸. 그치만 시를 읽은 후엔 내 모든 문장들이 사랑스럽다.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사랑 마음 계급 혐오 소수 약자 기억 그리움 비밀 추리 얼굴 변화 모정 믿음 폭력 나쁜손 역사 소외 약속 빈자리 겹겹이 얽힌 이야기들이 어느 것 하나 가벼이 넘길 수 없고 더이상 그래서도 안되니 힘겹게 읽는다 멈출 수 없었고 내내 속이 탔다. 이 일들은 소설일까. 진짜 소설은 책 밖에 있다는 말이 맞아. 과정이 어떠했을까 짐작도 안되지만, 꿋꿋하게 이 작품을 써 낸 작가의 수고를 알 것도 같다. 연정의 모정도 셜록의 순정도 너무 아팠다 나는.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31. 남아 있는 것은 어두운 생각뿐이다. 무엇인가를 밝혀내기 위해 이 문장들을 쓰고 있다. - 쓰는 이유가 명확하면 아무리 어려워도 한 사람에게는 닿을 것이다.
제비심장 철상자는 몰랐다 조선소 노동자도 그렇지. 스카프,페인트,용접,작업복,크림빵,조선소마을은 모르지 않았는데 내가 알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표지의 뒷편에도 나와있는 소설의 소개를 나는 50페이지가 넘도록 보지 못했다. 아마 이 소설은 내가 읽어주기를 바랐던 것이겠지. 감정이입이 벅찬 내가 지레 피하게 될까봐 그저 오렌지빛 그물만을 펼쳐 나를 잡아끈 것일테지. 철상자에 날리는 철가루들에 숨이 막혀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삭막한 문장에 치이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을 올려다보느라 끝까지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소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는 평론의 일부를 실감한다. 문학의 아름다움을 밀어두지 않고, 소설의 경계를 넓히며, 독자로 하여금 그 너머를 궁금해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그래..
브로콜리 펀치 별안간 벌어진 일을 천연덕스럽게 겪고나면 어떻게든 삶은 이어지는구다. 왜 브로콜리이고, 왜 밥그릇의 얼룩인지, 왜 손톱인지는 왜인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렇게 벌어지는 것 뿐. 이건 다 소설이니까, 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어렸을 때 읽은 엄청난 동화들이 마지막에는 그래도 안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다독이는 마지막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상아의 문으로 🔖 영겁의 꿈에 갇혀 이 가벼운 책 한 권을 일주일이 넘도록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간 읽어온 작가의 소설은 한달음에 끝으로 갈 수 있었는데, 이번엔 쉽지 않았다. 숨이 차는 긴 문장은 낯설고, 한 문장 안에서도 여러 번 표정이 바뀌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책장을 넘겼을 뿐인데 아까 거기가 아니었다. 내가 빨려 들어간 통로가 ‘뿔로 만든 문’이 아니라 ‘상아의 문’이었기에 나의 곤란함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진여가 서 있던 눈 내리던 길, 나무가 늘어선 숲, 사방의 벽이 하얗던 그곳을 안다. 두려움이 흘러넘치지 않게 하느라 내가 나를 놓친 적도 있다. 치명적인 속삭임에 귀가 먹먹해지는 감각도 알고 있다. 그래서, 혼란한 중에도 계속해서 빨려들어 갔다. 의심과 물음이 꼬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