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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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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계몽하려 들지 않음에도 눈 밝은 사람이 되게 만든다. 표지에 나란히 놓인 의자는 익숙한 모양이지만 사람마다 편히 앉을 수 있는 방법은 다르다는 사실은 너무나 쉽게 잊어 넘긴다. 작가가 살아온 세상을 들으며 덕분에 나의 세계가 확장되는 귀한 경험을 한다. 누군가의 삶을 이해한다 말하기란 얼마나 무거운 일인가. 그럼에도 이해를 해 볼 수 있는 사람이게 만든다. 요즘 울고 웃으며 를 보고 있다. 드라마가 끝나도 내 생각이 예전의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길 바라며 미뤄둔 책을 읽기 시작. 왜 이제야 읽는가. 조곤조곤 담담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인스타 브레인 뇌가 일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작은 항목을 정해두고 실천해보며 나에게 일어난 변화를 관찰 중. 그냥 안하면 그만인 일들이다. 아이는 이 책을 읽는 나를 애써 외면한다. 가뜩이나 하지 말라는 말이 많은 엄마가 이젠 ‘과학적으로’ 하면 안되는 이유를 말하니까. 휘둘리지 않는 삶이길 바란다 안 듣고 안 보고 싶어하다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알고 자신을 알기에 그럴 수 있길 바란다. 너도 그보다 내가.
벼랑위의 집 걱정이란 두려움과 혐오를 숨기는 얄팍한 수단에 불과하고 혐오는 진짜 두려움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할 때 생겨나고 두려움은 걱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세 단어가 돌고 도는 이야기였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일. 그 대상이 아이들이라면 더욱 노력해야한다는 사실에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쉽지 않은 일이니. 거기까지. 모든 소설이 다 재미있는 건 아니다. 물론 재미라는 것이 웃고 울고 흥미 진진함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 소설이 그랬다. 나 판타지 홀릭인데 말이지. 하지만 이야기에는 나를 기다리는 부분이, 지점이 반드시 있다. 대단한 몰입이나 뛰어난 분석을 하지 않아도 그저 읽는 중에 소설 속 어느 순간과 내가 한 번은 꼭 맞닿는다. 무겁지 않다 느끼면서도 좀처럼 속..
클라라와 태양 희망과 바람은 노력에 의해서 이뤄질 수 있다. 사그라지지 않는다. 우연의 결과로 보일 때조차 간절함이 어딘가에 닿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그 무엇도 누군가의 간절함을 보았다면 외면할 수 없음이다. Artificial Friend가 나오니 미래인가 하면서도, 아주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과거의 기억은 외국과도 같다는 어느 작가의 말도 떠오른다. 미지의 존재는 낯선 세계이지만, 다가서는데 적응은 필요하지 않다. 너무도 소설답다. 클라라의 희망이 걸린 곳이 태양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위대한 선택이었는지. 얼마나 다행인지.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 손바닥만한 햇빛이 거친 사포가 되어 살갗을 쓸고 지나간 것 같다. 볕과 빛은 밝음의 영역에 속할진데 태연한 어둠의 이면일 뿐이구나 한다. 그리고.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조예은 작가의 장편. 앞선 단편집이 너무 재밌어 도서관에 있는 또 한 권을 빌려와 읽었다. 녹아흐르는 죽음이다. 모든 죽음은 살아야하는 이유를 딛고 일어나지만 그 이유를 알릴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으니 너무도 쉽게 녹아내리는 것이 아닐까.
칵테일,러브,좀비 네 개의 단편이 들었는데 네 사람 이상이 죽고, 네 번 이상 죽었다. 감정 이입의 몰입이 과한 사람인지라 나는 사람이 죽고 피가 튀는 장면이 나오겠다 싶으면 최선을 다해 피한다. 영상 매체는 초반 분위기로 감을 잡을 수 있어 피하기가 쉬운데, 소설은 초반의 긴장감은 오히려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니 오히려 이야기에 붙들리고 만다. 그렇게 붙들려 복수도, 물과 숲의 사랑도, 감출 수 밖에 없는 좀비도, 잔인한 타임리프도 모두 목격하였다. 장마의 계절이면 떠오를 . 내내 마음이 저릿했는데, 아름다웠어. 안전가옥 출판사의 스토리 피디 시스템도 인상적.
런던을 걷는 게 좋아 나에게 한없이 낯선 도시를 익숙하게 걷는, 버지니아 울프의 산책 이야기. 두 번째 읽는다. 여전히 풍경은 낯설고 공감은 더디며 많이 들어본 장소이지만 먼나라의 내가 익숙해지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그게 좋았다. 런던다움을 그려낸 글이 주는, 나에게는 모호하게 느껴지는 공기 덕분에 런던은 여전히, 영원히 이국적인 장소로 남는다. 누군가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길이 다른이에겐 전혀 알 수 없는 세계가 되고, 누군가로부터 길어올려진 안온함은 낯선 세계로 바라보는 이에게 친절한 안내오 기능한다. 오랫동안 그리운,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내내 그리워하는 곳. 런던. 런던을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