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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2016-2020

다독임



누군가 내 마음을 다독여주길 바랄 때가 있다.
몸이 힘들 때는 평소에 먹지 않던 맛있는 음식으로도 달래지는데, 마음이 힘들 때는 혼자서 애를 써도 그게 잘 안될 때가 더 많다.

그럴 땐 나와 좀 떨어져 있지만
온기가 내게 닿아있는 다독임이 필요하다.

정세랑 작가가 세상과 연결된 끈을 꼭 쥐고 있는 것같았다면, 오은 시인은 자기 자신을 향한 애정을 놓치지 않는 듯 느껴진다.

둘 다 내게, 위로가 된다.
도전도?! 훗.

마음을 돌보는 일 또한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일처럼 스스로 하는 경험을, 그런 다짐의 순간들을 글로 배운다.

시인의 글에선 단어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다시 보인다. (기본적으로 시인우러러태도 장착) 재미난 말놀이 같다가도, 그 동안 한 쪽만 고집스럽게 바라본 나를 깨치기도 하고.


________

43. 살아가면서 우리는 무수한 ‘우리’를 갖게 된다. 동시에 ‘우리’라는 이름의 ‘우리’에 갇히게 된다. ‘우리’에 포함되지 못해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우리’라는 틀이 실허서 자발적으로 우리를 떠나는 사람도 있다. ‘우리’라는 말은 개인에게 안온함을 가져다주지만, 책임을 떠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심어줄 수 있다. 우리가 ‘우리’에 대해 항상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77.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구성르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바꾸고 나며 나 자신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상한 나를 이상한 채로 내버려두고 싶었다. 이상한 책을 읽고 이상한 생각을 하고 이상한 글을 쓰는 나를, 나부터 이해하고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 이상함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난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놀랍고 색다른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81. 기대는 막연하고 걱정은 구체적이다. 기대가 머릿소의 뜬구름 같은 것이라면 걱정은 새털구르므이나 양떼구름처럼 형체가 분명히 그려지는 것이다. 기대는 간헐적으로 찾아오고 걱정은 매일 들이닥친다. ‘앞으로 잘될 거야!’라는 기대는 ‘내일 당장 뭘 입지?’라는 걱정보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기대는 점점 줄어드는데 걱정은 풍성해지니, 간만에 품는 기대는 더욱 애틋하고 소중할 수밖에 없다.

107. 질삶답이 나오지 않는 삶이기도 한다.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내가 아직 이 세상에, 스스로의 내일에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눈만 뜨면 절로 생겨나던 무수한 질문 덕분에 우리는 그토록 열심히 꿈을 꿀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183. 시를 읽을 때, 나는 스스로를 발견해요. 나는 이런 단어에 끌리는구나, 이런 소재에 반응하는구나, 이런 문장에 마음을 내어주는구나...... 심신을 두드리는 시를 읽고 나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깨달음이 나를 향한 찬찬한 응시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늘 저 단어가 있었어요. 저 단어가 내 인생에 단단한 매듭을 만들어주었지요.

250. 눈물이 흘러 나올 때마다 불끈 주먹을 쥐게 만들었다. 주먹 안에는 ‘울지 마’라는 타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울지 않을래’라는 내 목소리가 새겨 있었다. 울지 못하게 만드는 외부 기제가 아니라, 울지 않기로 마음먹은 나 자신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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