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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window shadow

come from away 컴프롬어웨이



911테러가 났을 때 미국의 하늘길은 문을 닫아 걸었고, 어디로든 착륙해야 했던 비행기들은 캐나다의 작은 도시 갠더로 들어가게 된다. 벌어진 현실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채 낯선 땅에 내려야 했던 사람들과 비극적인 재앙에 자신들의 공간과 수고를 내어준 사람들이 겪은 감정과 상황, 그리고 그들이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극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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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반복되던 끔찍한 장면에
막연한 두려움이 커져갔고, 주변을 경계하느라 어깨가 뻐근했다.  911 테러는 아직도 어제일 같은데.

사고 희생자와 소방관, 건너건너 아는 유명인들의 사연 말고는 다른 이야기들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품을 보면서
그 날 24시간을 넘기며 하늘 위에 떠있었던 사람들, 나처럼 먼 나라의 비극에 눈물짓던 사람들, 그들을 위로하려고 무엇이든 했던 사람들, 비극이 스며든 미처 생각지 못했던 관련자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제야.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달라지고 싶던 욕망을 따르고, 사랑을 쫓고, 사랑을 떠나고, 증오로 자신의 두려움을 가리고, 의심하며 방어하고, 곁을 내어주고, 한 없이 그리워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아파하고, 말하지 못하는 존재들을 위해 어두운 밤을 밝히는 것까지 모두 고요한 세상을 깨우는 ‘사람’의 일이다.

세상 어디나, 새삼 어느때나 사람들의 시간은 비슷하게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차이를 내는 이들이 있고,
모두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도록 돕는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도 하지만.


가족도 사랑도 일단 잠시 접어두고
오롯이 나만을 두고,
내 삶의 방향을 정해가보려는 요즘이다.  
미처 떠올리지 못한 생각에 닿을 수 있게 하거나
늘 하던 생각에 낯선 찬바람이 불어드는 시간은 소중하다.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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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의 초대로 뮤지컬을 보게 되었다.
카라의 봉사자들에게 선물로 건네진 초대권이었다는데, 세상엔 고마움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음을 배운다.




오랜만에 서울의 중심 지역을 방문하여, 꼭 같이 오고 싶었다던 레스토랑에서 시즌 느낌을 누리며 식사를 하고, 비오는 거리는 따로 또 같이 우산을 쓰고 걸었다.
나를 집밖으로 불러내는 그녀 덕분에 근사한 저녁 시간을 보냈다.  

식당에서 여지없이 수다를 떨다가,
우리의 대화에서 가족 이야기를 빼고
우리가 서로의 ‘지금’에 대해 말한다면 나름 재미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나와 교집합이 많은 걸 (나는) 알지만 주로 그녀의 가려진 모습이고, 드러난 모습들은 서로 매우 다르다. (심지어 공연장에서 만난 지인들에게도 나를 그렇게 소개하더라, 저랑 많이 다르죠… 라고),
그래서 남이었다면 과연 이런 애랑(?) 친해질 수 있었을까 싶은 적도 많았는데, 어제 식당에서 어떤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하는 것을 보면서 (아마 음식얘기였겠지. 아님 동물얘기이었던가.) 그리고 리액션이 부지런했던 내 모습을 깨달으면서, 우리가 남이었어도 요즘의 우리였다면 내가 친하게 지내려 했겠구나 싶었다.

가족이라고 해도
인간적으로 좋아야 진짜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엔 변함없다.
그녀가 나의 자매인것이 나에겐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