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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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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의 문으로 🔖 영겁의 꿈에 갇혀 이 가벼운 책 한 권을 일주일이 넘도록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간 읽어온 작가의 소설은 한달음에 끝으로 갈 수 있었는데, 이번엔 쉽지 않았다. 숨이 차는 긴 문장은 낯설고, 한 문장 안에서도 여러 번 표정이 바뀌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책장을 넘겼을 뿐인데 아까 거기가 아니었다. 내가 빨려 들어간 통로가 ‘뿔로 만든 문’이 아니라 ‘상아의 문’이었기에 나의 곤란함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진여가 서 있던 눈 내리던 길, 나무가 늘어선 숲, 사방의 벽이 하얗던 그곳을 안다. 두려움이 흘러넘치지 않게 하느라 내가 나를 놓친 적도 있다. 치명적인 속삭임에 귀가 먹먹해지는 감각도 알고 있다. 그래서, 혼란한 중에도 계속해서 빨려들어 갔다. 의심과 물음이 꼬리를 ..
네 이웃의 식탁 익숙한 모습이 기괴하게 느껴진다. 나도 이런 사람들을 알지. 이 책을 읽은 누군가는 나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너무 짜증나서 빠르게 읽어 냈는데, 글을 쓰는 동안 또렷하게 기억나는 장면들. 으. 너무 싫어 👿 한 집에 사는 사이도 (바로 가족)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임을 깨닫고 외로움을 체감할 시간이 필요해. 고독한 기운이 깨어날 때 느껴지는 안전하다는 안도감. 홀로 선 나를 느낄 수 밖에 없으니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갖고, 온갖 배경을 지운 자기 자신을 바라볼 틈이 비로소 생긴다. 비장하지 않아도 그런 시간의 있고 없음은 그야말로 ‘무언가’ 있고 없는 삶으로 드러난다. ‘함께’라는 건 정말 말랑한 말이고, 함께라면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 더 멀리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