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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2016-2020

섬의 애슐리

신혼 여행지였던 롬복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꿀맛 달나라, 허니문의 장소였으니까.
귀하디 귀한 대접을 받으며 몇가지 낯선 경험을 했는데, 둘째날인가에는 작은 배를 타고 나가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작은 배를 나와 그이, 안내를 맡은 현지인 딱 셋이서 타고 조금 떨어진 바다로 나갔다.
인어공주의 바닷속을 상상하고 나섰지만, 막상 바다 한 가운데 가서보니 나는 여전히 물이 두려운 사람이었기에, 물 속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상황이 말도 안되지만, 그냥 돌아가는 건 더 말도 안되기 때문에 그이와 현지인은 바닷 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그 바다 위에 떠있는 배에 남았다.
하늘 구름 바다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떠있는 작은 배 위에 반쯤 기대 누웠는데, 괜찮겠냐며 백 번을 묻던 그이의 걱정과 달리 하나도 안 무서웠던 기억.
현지인의 모자를 빌려 작은 그늘을 만들었지만, 선글라스가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던 태양은 바로 보기 쉽지 않았다.

깊은 바다가 궁금했지만
그 바다 위의 고요함도 충분히 깊었다.

단 한 번의 기억.


배 위에서 정체모를 춤을 추는 애슐리를 그리며, 그 날의 바다에서 몸을 실었던 흔들리는 작은 배가 떠올랐다. 한국어 인사말을 하며 친절하게 웃어주던 현지의 사람들과 인생에 한 번이라며 기대와 설렘과 긴장과 부담을 다 끌어안고 그 곳을 찾은 나를 떠올렸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나의 이야기를 끌어오게 되었다.

그녀의 어떤 이야기도
내게는 늘 근사한 세계다.
이번엔
한참을 묻어둔 나의 이야기를 꺼내주는 순기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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