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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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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이번 소설의 제목은 내가 느낀 백수린 작가를 담았다.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고개를 기울여 조금은 반짝이게 보이는 각을 찾아 그 때를 그 공간을 문장으로 다듬고 이야기로 엮는다. ‘파독간호사’는 다른 누가 뭐라든 내게는 용감한 여인들이었다. 슬픔을 전제로 한 단어들로 설명한들 그랬다. 독일로 간 사람만 그러할까, 여인들만 그러할까. 터전이라 여기는 곳을 뒤로하고 짐을 싸 밀고 나서는, 그 틈에 희망과 다정함을 잊지않고 챙겨 나서는, 과거가 된 그리고 미래가 될 삶은 모두 용기이지. 희망도 다정함도 스스로에게 먼저 건네기로. 그래도 좋겠다. 이모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은 푸근하다. 엄마랑은 다른 따뜻함이 있어. 나의 이모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여름의 빌라 백수린의 소설은 위로다. 누군가의 일상은 서사가 되고 그녀의 문장을 거쳐 무사한 기록이 된다. 아슬아슬을 지나 결국에는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오늘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과거와 현재를 나눠가진 여자와 남자, 남자와 여자의 두 사람만이 (두 사람이니까) 알 수 있는 필연적인 사정을 보는 것이 좋았다. 거의 예상대로 살아지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날이 더 많지만 침대로 들어갔을 때 막상 그 날이 밤을 따라 흩어진다 생각이 들면 아까운 마음에 감사노트에 적을 문장을 부랴부랴 늘이고만다. 그런 마음을 모아 놓은 소설이 아닌가. 작가들은 사람들의 감정 위를 살얼음처럼 살피며 걷는 가보다. 물론 조심스럽게, 하지만 발을 디딜 수 있을만한 꼭 필요한 자리를 놓치는 법이 없다. 아는 척을 해도 좋을, 아니 꼭 기억해두어야 할 자리를 놓치는 법이 없다. 근사한 사람들이다.
참담한 빛 왜일까 제목을 알면서도 내내 찬란한 빛이라 생각하며 읽었다. 이 소설집 다시 읽는다면 분명 다르게 읽힐 것 같아 부러 여운을 남겨두고 싶을만큼. 도 읽어 보았는데 읽는 동안의 나는 그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탄다. 나는 그 불빛이 무서워 눈을 꼭 감았다. 어둠보다 무서운 것은 그 무럽, 빛이었으니까. 로베르를 보낸 뒤 처음으로 ㅇ루었어요. 아이처럼. 호숫가의 한가운데, 희미한 빛의 한복판에서요. 언젠가 자신에게도 삶이 우호적이었던 때가 있었다. 꿈을 꾸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던 달콤한 날들도 분명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