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립풀 런던
오래전 런던 여행의 마지막에 내셔널 갤러리가 있었다. 정말 그랬는지, 여행을 준비하던 나의 바람이었는지 이제는 흐릿해진 장면들만 남은, 그 마저도 자꾸 증발하는 중에도 미술관에 대한 기억은 아직 선명하다. 건물의 기둥, 계단을 숨차게 올라 거대한 문 안으로 들어설 때 그곳의 포근한 공기, 볼륨을 낮춘 발걸음 소리, 실제로 보니 사진에서보다 무지 작아 놀란 작품, 고전 미술이라는 작품들을 잔뜩 가지고 원하면 얼마든지 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시샘, 다 돌아보고 싶은 조급함, 문이 닫도록 한 곳에 오래 머물며 나를 새겨 놓고 싶던 무거운 발걸음, 벨라스케스 특별전을 놓친 가벼운 지갑, 그런 기억들. 로또가 되면 뭘 하고 싶냐고 물으면 그러면 나는 훌쩍 그곳으로 가 한 달 동안 날마다 들락거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