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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iversary

 

몇 번째 기념일이지?
10주년을 넘기고, 우리 함께한 시간이 모르고 지낸 시간보다 길어진 다음부터, 여러 기념일의 햇수를 세는 일은 멈추었다.
그런데 막상 타이틀을 달려니 필요하다?!ㅋ.

다른 날과 다를 것 없는 주말 아침
영상 예배를 드리기 위해 우리는 소파에 앉았다.

결혼식 날도 바람 찼어.
교회는 예뻤지.
그날, 좋았어.

십 년을 넘게 한 집에 살며 (진정?!) 이젠 그이 빈자리는 잘 그려지지도 않는데, 과거의 나는 오히려 오늘 같은 장면을 살아갈 거라 상상도 못했다.
어느쪽의 당황스러움이 클 것인가. 훗.

우리가 나란히 앉아 여전히 정동의 예배를 드릴 줄
내가 사는 집에 저리 큰 티비가 있을 줄
심지어 나무가 우리집 안에 있을 줄
책꽂이를 눕혀 쓸 줄.
아이가 있을 줄
그 아이가 모은 빈 사이다병을 내내 보게 될 줄
우리집 거실이 이렇게 생겼을 줄
방마다 테이블이 있을 줄.
우리가 지금의 일을 할 줄
우리가 이런 걱정을 할 줄
우리가 그 걸 그렇게 즐길 줄.

십 년이 넘어도, 여전히 그 시간들에 놀랄 줄.
상상도 못했다.

거실창으로 들어온 햇살에 노곤노곤 늘어지며 이유를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지금의 삶이 특정한 기준선을 넘었거나, 일정 부분을 포기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아니라, 이전의 내가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상상하고 공상하는 걸 즐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감상에 빠지기를 즐기는 것 뿐 현실을 벗어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작은 순간들이 가져온 행복에 크게 감사했고, 그걸 알아채며 소소하게 사는 것이 내게 어울린다 여겼다. (이건 여전히 어울리는 것 같다)
사랑받고 사는 날들이 나를 안정되게 해주었고, 나로 인해 행복해하는 그이를 보고 있자면 나의 존재 가치는 충분했다.
결혼을 그이와 한 것은 여전히 내게 축복이다.
나라는 사람의 파트너로, 내 아이의 아빠로 그이는 참 괜찮은 사람이다.
여전히 다른 누구랑도 바꾸고 싶지 않아.

과거의 나는 미리 상상하고, 이리 저리 먼저 정해보고, 낯선 환경을 꿈꾸는 일이 벌렸다간, 그게 기대가 되고 욕심을 건너 혹 실망을 하게되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쫄보 ㅎ


우리는 잘 살았고, 큰 어려움 없이 오늘까지 왔다.
너무나 감사한 일.
그 어렵다는 평범한 삶을, 비교적 건강하게 여기까지 일구어 온 우리를 아낌없이 칭찬한다.!


충분히 칭찬하고, 이제 다른 방향을 좀 볼까 그런다.
상상도 못한 모습에 감탄하는 건 해봤으니까.

이번주와 다음주 계획을 적는데 그치지 말고 만날 손에 쥐고 있는 다이어리를 더 크게 쓰면서,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도 떠올려보련다.
여전히 우리 둘이겠지만, 그 둘이 어디서 어떻게 살게 될까 상상🙄.연습삼아, 다음 봄의 캠핑을 떠올려 보려는데 그것도 잘 안되네.;;
실망의 순간이 오겠지만, ‘그럼어때’ 하며 털어버릴 줄 아는 내가 그 자리에 있길 바란다.
소중한 우리의 결혼 생활이 성장하길 바란다.
클리셰 문장같지만, ‘지금처럼만 행복하길 바라’던 나라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낯선 바람이다.
우리의 시간이 나의 다짐으로 변화를 겪을 수 있을 것인가. 두둥.


새롭거나 깊거나.
삶에서 마주하는 키워드에 한 번씩 입혀본 말인데,
내게 가장 소중한, 그이와의 시간 혹은 우리의 관계를 두고는 한 번도 생각해 적이 없었네.
너무나 익숙한 사랑이었기 때문이겠지
우린 충분히 깊으니, 새롭게.
그래서 서로에게 이롭게.

당신이기에
내가 이런 다짐도 할 수 있지.

여전히 잘 잡았다 싶은 당신의 손.
우리만의 손깍지가 주는 온기를 키보드 위의 빈 손에서도 느끼며 이 글을 씁니다.



뭔가 표정과 필터링이 어색하지만
나는 꽃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