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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2011-2015

너를 사랑한다는 건(Kiss and Tell)


너를사랑한다는건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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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
그보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나'는 새로 만나는 여자의 전기를 쓰고자 한다.

전기라는 책들이 그렇듯.
그 형식을 빌린 듯(빌리지 않은) 이 책도
역시 지루함이 있다. 
다른이의 삶에 우리는 그리 긴 시간 흥미를 갖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루함의 꼬리 끝엔 다음장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연결 고리들이 있다.
나의 영역으로 들어온 사람의 이야기를 외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알아가는 것은 머리로 하지만
사랑한다는 건 머리로 하지 못하는 일들까지 같이 데려가야 하는 일이다.
감정적 수고는 힘겹다.
하지만 우리의 머리는 또 얼마나 많은 한계를 갖는 가.



낯선이의 단편적 행동을
마치 잘 아는 한 장의 사진을 설명하듯
그 사람의 성격, 생각, 말씨, 나아가 '이런 사람일 게 분명해' 하고 결론을 짓는 일은
사실 하루에도 몇번씩 일어난다.
주변인을 대상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연일 입에 오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의 표현대로 '뻔뻔스럽게'도 우린 그런다.
혼자만의 발칙한 상상에 그칠 수도
아님 , 그 대상에 치명적 상처가 될 수 도 있는 일이다.
재미있기도, 위험하기도 한 일이다.

말이 되고 글이 되려면, 나오기 전 머리의 한계를 잠시 떠올려야 할 듯.



아는 게 많아, 망설임이 끝없는 '나'는 결국 결말을 찾는다.
'나'보다는 이사벨이 더 잘 보이던 나는 결국 그 결말에 웃고 만다.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하는 작가를 말할 때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어떤데?" 하고 물었을 땐
똑 떨어지는 표현으로 나의 감상을 전하지 못했다.
" 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수다를 되게 유식한 듯 느껴지게 썼달까?..
 뭔가 심각한 듯 하지만, 꽤나 매력적이어서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참 끌린달까..."
이런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나는 좋지만 듣는 이는 별로 와닿지 않을
그래서 독자 확장에 기여하기 힘든 표현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밖에 말하지 못했다. 켁.

그런데,
이 초기작에 내가 느낀 그의 매력이
그의 문장으로 쓰여있었다.

..... 실제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마 잠 다음으로 그것이 가장 인기있는 소일거리일 것이다. 심지어 가장 빽빽한 연대기의 주인공이 되는 위대한 남녀들도 그들 삶의 어떤 대목들은 ...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생각하며 보냈을 것이다. 그냥 의식 속에 이런저런 일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때는 큰 소리로 '나는 베를린 사람이다' 또는 '사실 파리라면 미사를 드릴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선언을 하는 식으로 명료하게 상황을 정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할 때 상대가 이해흫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여, 한두 가지 사항을 분명하게 전달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의 의식에서 전개되는 혼란스러운 과정을 공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소설 속의 인물들에게서도 불가피한 생각의 복잡성이 대체로 나타나지 않는다. 소설가들은 등장인물의 생각을 찐득거리는 정신에서 뽑아내, "그는 생각했다", "그녀는 생각했다"라는 말끔한 말을 이용해 페이지에 깔아놓는다.(p.133) ...


그는
"머릿속에 떠다니는 이런저런 일들을 흘려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끄러운 수다중인 것처럼 정신이 없기도 하지만
홀리듯 공감하게 되고.
문장으로 읽고 나면 이상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일이 아니게 만든다.
감정이 이입된 긴 문장은 지금부터 적어도 내겐 명료하다"

누군가 또 "어떤데?"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해야지 싶은데... 길다.ㅋ



젊은 나이에 '깊거나'를 가졌던 그의 정신적 풍요가 부럽.
그 깊은 사유를 누리게 되기까지의 치열한 시간이 부럽.
 


꽤 오래 잡고 있었던 책을 내려 놓으며
그래도 남자는 여자를 알기 힘들지... 라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ㅋ

그니까 차라리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세요..
사랑받는 여자는 굳이 알지 않아도 되게끔 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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